석탄투자 제한 들고 나온 국민연금, 넷제로는 어쩌고

  • 등록 2024.12.27 10: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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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7개월 만에 내놓은 전략, 기후위기 대응엔 역부족



[산업경제뉴스 이유린 기자]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화석연료로부터의 탈출을 선언한 국민연금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9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석탄 관련 기업의 에너지 전환을 위한 투자전략(안)’을 의결했다. 2021년 5월 탈석탄 선언 이후 3년 7개월 만에 내놓은 첫 공식 전략이다. 


기후변화 대응과 기금의 수익성을 함께 고려한 균형 잡힌 현실적 방안이라는 게 연금 측의 공식적인 입장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다. 전략의 실효성과 기준의 엄격성 모두 기대치에 훨씬 모자란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 시대 분위기 읽기에 실패한 국민연금의 자충수
이번에 국민연금이 들고 나온 전략은 석탄기업의 전환 가능성과 시장 혼란을 동시에 고려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매끄러운 에너지 전환을 유도함으로써 효율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이끌겠다는 의미다.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최근 3년간 석탄 관련 매출 비중이 50% 이상인 기업을 ‘석탄기업’으로 정의하고, 이들 기업과 5년간 비공개 대화를 진행해 에너지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만약 이 기간 동안 기업이 전환 노력을 보이지 않으면,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투자 제한을 검토할 수 있다. 다만, 기업이 일정 수준의 전환 계획을 제시하면 대화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예외 조항도 포함됐다. 또한, 해당 기업이 발행한 녹색채권 등 친환경 금융상품에 대해서는 투자를 허용한다는 단서도 달렸다. 이에 따라 해외 자산에는 2025년부터, 국내 자산에는 2030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국민연금은 이번 조치가 기후위기 대응과 기금 수익성 간의 균형을 고려한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전략 시행과 동시에 탄소중립(Net-Zero) 이행을 위한 초기 기반을 다졌다고 평가했다. 

그간 투자 책임 강화와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해온 사회 단체들은 이번 발표에 큰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포트폴리오 내 금융배출량 산정 및 감축목표 설정은 이뤄지지 않았고, 석유·가스 등 다른 화석연료 자산에 대한 투자 방향성도 전략에 포함되지 않는 등 그 한계가 너무 명확하다는 이유에서다.

3년 7개월이란 장고 끝에 나온 것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악수라는 평가다. 누구보다 기후위기 대응에 앞장서고 있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이번 전략이 흠결 투성이의 대처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국민연금의 발표 직후인 19일 성명서를 내고 국민연금의 석탄 투자 제한 전략을 두고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도, 좌초자산으로 인한 국민연금 수익률 하락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찾아볼 수 없는 졸속 정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발표에 걸린 지난 3년 7개월이 무의미하고 낭비된 시간이 되어 버렸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국제적인 흐름에서 이탈한 석탄기업 판별의 정량적 기준 50% 설정, 이에 따른 적은 석탄투자 제한 규모, 너무 긴 국내 석탄 기업과의 비공개 대화기간, 그린워싱 우려가 내포된 에너지 전환계획 수립, 2030년 이후 기업과의 비공개 대화 기간 연장 단서 등을 거론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석탄기업 판별의 정량적 기준 50% 설정부터가 문제라는 입장이다. 현재 글로벌 연기금과 금융기관들은 20~30%를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세계 석탄 퇴출 리스트를 발표하는 우르게발트는 20%를 제시하고 있는데 비해 너무 과한 설정이라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국민연금의 석탄 투자 제한 대상은 전체 34조 원 중 2조 3천억 원(국내 2.1조, 해외 0.2조)에 불과하다. 해외 자산의 경우 2025년부터 적용되지만, 국내 자산은 2030년부터 적용돼 실질적인 투자 제한 효과는 미미하다는 평가다.

석탄기업과의 비공개 대화를 5년간 진행한 뒤에도 개선이 없을 경우에만 투자 제한을 검토하겠다는 부분 역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기업의 ‘전환 노력’이 인정되면 대화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있어, 사실상 무제한 유예가 가능해지는 때문이다. 이는 에너지 전환에 대한 기업의 안일한 태도를 조장할 수 있으며, 투자 제한이라는 최후 수단을 무력화할 수 있는 악성조항이라는 것이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의 주장이다.

2040년까지 자산 포트폴리오의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설정한 국민연금의 이번 전략에는 금융배출량 산정이나 감축 목표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는 점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인 석탄뿐 아니라 석유와 가스도 좌초자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국민연금이 자산 포트폴리오 전반에 대해 금융배출량을 산정하고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린 기자 lyl8282@biz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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