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을 만든 요인은 다양하다. 잘 살아보겠다는 한국인의 의지, 자식에게는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부모의 갈망, 이를 뒷받침하고자 한 정부의 노력 등이 맞물린 결과가 그것이었다. 그것들이 합쳐져 대한민국을 세계 10대 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일 터다. 물론 이에 만족할 한국인은 없다. 또 한 걸음의 스텝업을 바라는 열기가 대한민국을 움직이게 하는 지금,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이 에너지 고속도로다. 단순한 전력 인프라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과 지역 균형, 그리고 기술 주권의 방향을 가늠하는 거대한 축인 에너지 고속도로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본지는 4부작 기획 시리즈를 통해 ‘에너지 고속도로’가 지닌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의미를 다각도로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연재 순서
① 5등에 만족 못해.. HVDC 국산화가 안겨줄 미래
② 바람이 가는 길 따라 움직이는 21세기 전력
③ 에너지 고속도로 혜택 지역에도 나눠져야 마땅
④ 천문학적 비용에 누더기 신세 전락 처한 ‘에너지 고속도로’
[산업경제뉴스 이유린 기자] 지난 7월, 경기도 양주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공개한 200MW급 전압형 HVDC(초고압직류송전) 변환소는 향후 대한민국 에너지 주권의 미래가 어떨 것인지를 만천하에 과시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총 1578억 원을 투입한 프로젝트의 결실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이룩한 성과에 해당하는 선진 기술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뜻깊은 것은 이 기술의 전 주기에 걸쳐 국산화를 이뤄냈다는 점이다.
한전, 효성, 전기연구원 등 20개 산학연 기관이 손을 맞잡고 이뤄낸 쾌거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핵심장비와 시스템, 설계 기술 등의 분야는 여전히 외국에 의존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쏟아지는 찬사 속에서도 이번 성과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말하는 목소리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 손실 적고 효율 높아 변동성 안정적 흡수 가능
HVDC(HIGH VOLTAGE DIRECT CURRENT)는 전력을 직류(DC) 형태로 장거리, 대용량 송전하는 기술이다. 손실이 적고 효율이 높아 '에너지 고속도로'라 불릴 만큼 전략적 가치가 크다. 특히 분산형 전원 확대, 재생에너지 확대와 같은 한국형 에너지 전환 모델과는 최적의 궁합을 자랑하는 기술이다. 이번 쾌거가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술적으로 살펴보면 교류 방식과 비교 시, 송전 손실을 최대 30%까지 줄일 수 있으며, 수백 킬로미터 이상의 장거리 송전에도 장점을 지니는 것이 HVDC다. 지중 송전에 용이해 주민 수용성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유럽과 중국 등은 이미 국가 간 HVDC 연계망을 구축하며 이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바로 이런 기술을 오롯이 국내 연구의 성과로만 구축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불러올 순기능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일단 HVDC 기술의 국산화는 그동안 전적으로 기대다시피 했던 외산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 리스크를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전력반도체, 절연체, 케이블 등 연관 부품·소재 산업의 육성을 통해 국내 산업 생태계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2030년까지 글로벌 HVDC 시장 규모는 약 159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한국 기업의 수출 산업화 가능성도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또한 향후 우리의 에너지 전환의 모든 것으로 거론되는 신재생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을 가능케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 역시 감출 수 없다.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에 있어 문제가 되는 변동성을 안정적으로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양광, 풍력발전 등 산지 및 해안가에서 생성한 신재생에너지를 도심까지 효율적으로 이동시키는 데 필요한 핵심 기술인 HVDC를 탄소중립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인프라로 거론하는 이유기도 하다.
◆ 허울뿐인 국산화 안 되려면 핵심 장치 개발 서둘러야
이런 기술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국산화한 것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아쉬운 면 역시 존재한다. 현재 확보한 기술은 200MW급에 머물러 있으며, 유럽 등에서 상용화된 GW급 대용량 시스템과는 여전히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이 그렇다.
현재 운영 중인 HVDC 시스템 대부분은 외산 중심의 구조라는 점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한 국산화율은 일부 보조 장비에 그치며, 변환기, 제어 시스템 등의 핵심 장치는 여전히 우리보다 앞선 외국 기술에 의존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아직 우리의 기술력이 다듬어야 할 부분이 차고 넘친다는 점이다. 현재 글로벌 HVDC 시장의 95%를 장악한 GE, 지멘스, 히타치에너지 등과의 기술 격차는 누가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는 형편이다. 이를 따라잡기 위해 대용량 시스템 개발과 국제 인증 확보에 매달려야 함도 당연하다.
HVDC 국산화는 단순한 기술 확보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이는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 등 국가 전략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해야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민간이 함께 구축하는 다층적인 대응이 이어지고 있음은 무엇보다 다행한 일이다. 변환기, 제어시스템 등 HVDC의 핵심 기술 개발을 위해 연구를 이어가야 함은 물론이고 소재·부품·장비 기업 간 유기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해 기술 개발부터 양산, 유지보수에 이르는 구조 생성도 필요하다.
우리가 개발한 국산 기술을 세계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술 표준화와 인증 제도 구축 역시 시급하다. 이를 통해 국내 HVDC 기술이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