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을 만든 요인은 다양하다. 잘 살아보겠다는 한국인의 의지, 자식에게는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부모의 갈망, 이를 뒷받침하고자 한 정부의 노력 등이 맞물린 결과가 그것이었다. 그것들이 합쳐져 대한민국을 세계 10대 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일 터다. 물론 이에 만족할 한국인은 없다. 또 한 걸음의 스텝업을 바라는 열기가 대한민국을 움직이게 하는 지금,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이 에너지 고속도로다. 단순한 전력 인프라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과 지역 균형, 그리고 기술 주권의 방향을 가늠하는 거대한 축인 에너지 고속도로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본지는 4부작 기획 시리즈를 통해 ‘에너지 고속도로’가 지닌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의미를 다각도로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연재 순서
① 5등에 만족 못 해.. HVDC 국산화가 안겨줄 미래
② 바람이 가는 길 따라 움직이는 21세기 전력
③ 에너지 고속도로 혜택 지역에도 나눠져야 마땅
④ 천문학적 비용에 누더기 신세 전락 처한 ‘에너지 고속도로’
[산업경제뉴스 이유린 기자] 바닷가를 떠도는 바람은 그저 답답한 심사를 달래주는 자연의 선물일 뿐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진 그랬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바람은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아닌 우리 국토를 떠받드는 전력을 생산하고 옮겨주는 중차대한 업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는 끝없이 이어진 전깃줄을 타고 흐르는 것이라는 생각은 옛날 말이다. 지금의 전력은 바람의 길을 타고 굽이굽이 헤엄친다. 풍력발전으로 만들어진 전기를 잘 보내는 법,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순탄하게 이어가는 방법이 되고 있다.
◆ 바다 건너 육지로 이어지는 거대한 직류의 흐름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기존 화석연료로 만들어내는 전기를 활용하는 손쉬움을 포기하고 번거롭고 힘든 재생에너지를 만드는 것이 곧 깨끗한 지구, 탄소중립의 시대를 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담벼락에, 목장의 잔디 위에 세워진 태양광 설비가 존재하는 이유다. 끝없이 이어진 바다 한가운데 덩그라니 세워진 풍력 발전 설비를 만든 이유다. 그렇게 만들어진 에너지들이 21세기의 한국을 지탱해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만들어진 에너지가 손실 없이 이 땅 곳곳으로 옮겨진 뒤의 일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공들여 만든 에너지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새어나가고 유실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래서 만들고자 하는 것이 바로 에너지 고속도로다. 바람을 전력으로 바꾸고 산업으로 연결하는 국가적 인프라, 에너지 고속도로는 재생에너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의 관계가 된다.
그중에서도 풍력 발전은 에너지 고속도로의 조력을 간절히 원하는 상태다. 육상 태양광의 입지 한계와 주민 수용성 문제로 인해 겪는 어려움을 덜 수 있는 것이 풍력 발전이다. 정부가 해상풍력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 전략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연중 평균 풍속이 7m/s 이상인 전남과 전북의 서해안은 대규모 해상풍력 발전에 최적화된 입지를 지니고 있어 매번 발전 계획 때마다 정부의 관심을 끄는 지역이다. 정부가 2030년까지 14GW 규모의 해상풍력 설비를 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전남 신안과 영광, 전북 고창 등지에 8.2GW 이상의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추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시설이 제대로 활용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메리트를 얻게 된다. 1GW만으로 연간 약 25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상풍력 발전 후보지들이 단순한 전력 생산지를 넘어 RE100 산업단지, AI 데이터센터, 수소 생산기지 등을 먹여살릴, 산업생태계 전환의 핵심 자원으로 주목받는 배경이다.
◆ 생산과 배송의 완벽한 조화 이끄는 에너지 고속도로
문제는 그렇게 생산된 에너지를 어떻게 전국 각지에 보내냐는 점이다. 아무리 정교한 시설이라 해도 에너지의 특성상 전달 과정에서의 일정 부분 손실은 불가피하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까지도 에너지 생산업계의 고민으로 남아있다.
기본적으로 해상풍력으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송전하기 위해서는 장거리·대용량 송전망이 필수적이다. 최소한의 손실로 안정적인 전력 배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서해안 HVDC(초고압직류송전)망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에 속도를 내는 이유기도 하다.
현재 추진 중인 주요 구간은 신해남에서 태안, 서인천을 잇는 430km 구간과, 새만금에서 태안, 영흥을 연결하는 190km 구간으로, 총 620km에 달한다. 이 사업에는 약 8조 원의 예산이 투입되며, 완공 시 8GW 이상의 전력을 수송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정부는 2030년까지 1차 구간을 개통하고, 2040년까지는 서해안과 남해안, 동해안을 잇는 U자형 해상 전력망을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대로만 된다면 재생에너지 생산지와 수요지를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순탄해질 것이 분명하다.
흔히 에너지 고속도로는 단순한 송전망이 아니라, RE100 산업단지와의 연결망이라고 한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글로벌 캠페인인 RE100은 탄소중립 시대 에너지 전환의 모든 것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을 고려한다면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이 곧 넷제로 성공의 기본조건이 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주요 기업들도 참여하고 있는 가운데 전남 신안, 새만금, 강원 춘천 등지에서 RE100 산업단지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 당연히 이들 단지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직접 공급받는 PPA(전력구매계약) 체계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이를 통해 RE100 이행 기업을 유치하고,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며, 지역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어지고 있다.
서해바다에서 만들어지고 수도권에서 소비되어지는 대한민국 재생에너지의 성패는 에너지 고속도로를 타고 북상하는 물류, 아니 전류의 성공적인 수행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를 위해 기술, 정책, 지역, 산업이 함께 움직여야 함은 당연하다. 바람을 타고 흐르는 에너지는 그렇게 대한민국의 닫힌 속을 뚫어주는 견인차로 기동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