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획 대한민국의 미래 에너지고속도로 구축에 달렸다] ④ 천문학적 비용에 누더기 신세 전락 처한 ‘에너지 고속도로’

  • 등록 2024.10.30 09: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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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앞에 장사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백년대계 어쩌나
민간 투자 활성화 이끌 효율적 정책 해법 모색해야



한강의 기적을 만든 요인은 다양하다. 잘 살아보겠다는 한국인의 의지, 자식에게는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부모의 갈망, 이를 뒷받침하고자 한 정부의 노력 등이 맞물린 결과가 그것이었다. 그것들이 합쳐져 대한민국을 세계 10대 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일 터다. 물론 이에 만족할 한국인은 없다. 또 한 걸음의 스텝업을 바라는 열기가 대한민국을 움직이게 하는 지금,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이 에너지 고속도로다. 단순한 전력 인프라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과 지역 균형, 그리고 기술 주권의 방향을 가늠하는 거대한 축인 에너지 고속도로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본지는 4부작 기획 시리즈를 통해 ‘에너지 고속도로’가 지닌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의미를 다각도로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연재 순서

① 5등에 만족 못 해.. HVDC 국산화가 안겨줄 미래

② 바람이 가는 길 따라 움직이는 21세기 전력

③ 에너지 고속도로 혜택 지역에도 나눠져야 마땅

④ 천문학적 비용에 누더기 신세 전락 처한 ‘에너지 고속도로’


[산업경제뉴스 이유린 기자] 신재생에너지로 대변되는 에너지 전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백년대계(百年大計)로 불린다. 한시도 늦출 수 없고 게을리해서도 안 되는 국가 핵심사업이란 의미다. 사안이 워낙 중차대한 만큼 이를 완벽히 수행해내려면 투입가능한 모든 요소들이 요구되는 사업이다.


정부 역시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속도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다양한 문제거리들이 속속 등장하는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천문학적인 비용이다. 개별 사업 하나하나에 투입되는 비용만으로도 기존 책정 예산을 소진할 정도의 규모인 탓에 재원 조달에서부터 애를 먹고 있는 탓이다.


이대로라면 비용의 벽에 부딪혀 완공하더라도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누더기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비판적인 예상이 지배적이다. 우리의 에너지가 마음 편히 달려야 할 에너지 고속도로의 부실시공 우려는 한낱 기우여야 한다. 그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안정적인 재원 조달이 될 것이다. 


◆ 초고압직류송전 인프라 구축에만 2조원.. 쉽지 않은 재원 조달

전라남도 신안에 조성 중인 서남해 해상풍력단지는 현재 우리 재생에너지 사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총 8.2GW 규모라는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풍력 발전으로 계획대로 완공된다면 이로 인한 혜택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수준이 된다.  묶은 고민을 한번에 날려줄 대규모 에너지 사업이라는 뜻이다.


현재 한국의 4인 가구 평균 월 전력 사용량은 약 427kWh이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46만 가구가 한 달 동안 사용하는 전기를 하루 만에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인 셈이다. 이 정도면 웬만한 중소 도시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수준. 해상풍력 단지 하나로 수십만 가구의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새삼 에너지 고속도로가 왜 중요한지 실감이 되는 대목이다.


재생에너지가 왜 필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업이지만 이에 소요되는 비용이 너무 막대하다. 당장 생산 전력을 육지로 보내기 위해 필요한 초고압직류송전(HVDC) 인프라 구축에만 2조원 가까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재원 조달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는 있지만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덕분에 애초 계획에 수정이 가해지고 있다. 당초 계획된 직류 송전 노선은 충남 서부권까지 연결될 예정이었으나, 고비용과 민원, 그리고 예산 조정 문제로 인해 일부 구간은 축소되거나 사업 자체가 단계적으로 나눠 추진되는 상황이다. 


이는 비단 신안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풍력으로 생산된 전력이 실제로 수요처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 여기저기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돈이 발목을 잡은 셈이다.


문제는 이로 인한 나비효과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수익성 확보에 실패한 사업자는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고 연쇄적으로 사업이 지연되면서 안 그래도 경관 훼손이나 전자파 유해성을 이유로 반대하던 지역의 반발은 더 거세질 것이 명확하다. 제대로 수선하지 못해 여기저기 파이고 찢긴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 국산화 통해 경비 절감 좋지만 신뢰 구축이 앞서야

해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한 번에 답을 구할 수는 없음은 자명하다. 이에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HVDC 기반의 송전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30년까지 총 12GW 이상의 재생에너지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직류 송전망 구축을 목표로 로드맵을 마련함으로써 사업 완공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관련 기술의 국산화를 통한 비용 절감이다. 고압 변환기와 제어 시스템, 특수 절연 소재 등 외산 의존도가 높은 핵심 장비의 국산화를 통해 사업비 절감을 꾀한다는 것. 이를 통해 20~30%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여타의 재생에너지 사업에서 경험한 것처럼 민간 투자를 증폭시키는 방법도 고민 중이다. 수익 배분 방식 개선과 세제 혜택 강화로 민간 사업자의 지갑을 두툼하게 만들겠다는 것. 이것이 기업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지만 전례에 비춰보면 성패를 가늠하기는 힘들다.


다중 노선 설계나 모듈형 송전 구조 채택을 통해 초기 투자비를 분산하는 방식도 대안 중 하나로 제시되고는 있지만 이것이 본질적인 해법은 아니다. 결국 현재 떠안고 있는 문제, 즉 예산의 한계와 기술의 불확실성, 민원과 환경 문제 등이 고스란히 남겨질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기업들이 섣불리 뛰어들기는 힘들다. 당장 대규모 초기 투자와 투자 비용 회수도 부담스럽지만 그보다 정부의 지원정책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더 문제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이다. 


수년 주기의 사업 변경, 예산 변동, 민원 갈등 등으로 흔들리는 정부 정책은 민간 투자자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이제는 ‘기술 주권’이라는 국가적 목표 아래, 명확한 방향성과 장기 로드맵을 갖춘 뚜렷한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기술 자립’과 ‘경제성 확보’라는 두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에너지 고속도로는 정부, 혹은 민간의 독자적인 참여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양자가 서로의 입장에 공감하고 신뢰하는 것으로 해답을 모색하는 것으로 에너지 고속도로가 매끄럽게 조성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이유린 기자 lyl8282@biz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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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경제뉴스| 등록정보:서울,아04803ㅣ등록일:2017.10.26ㅣ발행일:2017년 11월 5일 발행인 : 주식회사 지식품앗이 양학섭ㅣ편집인 : 민경종 주소 : 03443 서울 은평구 증산로17길 43-1, 제이제이한성B/D B1층 (신사동) ㅣ 전화번호:070-4895-4690 Copyright Biznew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