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제뉴스 이유린 기자] 지난 1일, 이스라엘을 폭격한 이란의 대규모 미사일 공격 이후 피어난 중동발 위기감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그간의 전례에 비춰보면 이번 공습에 따른 후폭풍이 즉각적으로 불어올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이스라엘이 이대로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는 탓이다.
국내의 각종 언론들은 이로 인한 유가 급등을 우려하는 기사를 속속 쏟아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로서는 무엇보다 무서운 일이 유가 상승이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우리의 삶과 무관한 국제 정세의 변화쯤으로 여기기 쉽지만 그로 인한 타격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악몽 같은 일이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주유소 들르기를 줄이면 되지 않겠냐 싶겠지만 그야말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한 발상이다.
유가 상승만큼 우리 삶을 직접적으로 뒤흔드는 일이 흔치 않은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제 뉴스를 들여다보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관련 기사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진짜 의미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따지고 보면 우리와는 전혀 무관한 남의 나라 앞바다를 막는 일에 불과한데 왜 그토록 많은 언론과 기관들이 이를 우려하고 염려하는 것일까.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불러올 파장과 그에 따른 후폭풍을 조목조목 짚어보았다. 모르는 게 약인 세상을 살아선 안 된다.
◆ 세계 원유의 30% 이상이 오가는 실질적 원유 대동맥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과 오만 사이,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해를 잇는 좁은 수역을 가리킨다. 바다라고 말하기엔 다소 애매해보이는 공간이지만 그 작은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상상 이상이다. 세계 경제를 단 한 순간의 선택으로 뒤흔들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느냐 아니냐는 곧 지구를 움직이게 하는 석유의 원활한 움직임을 좌우하는 그런 일이다. 인간의 신체로 비유하자면 심장에서 나오는 혈액을 온몸으로 나르는 대동맥에 해당된달까.
그 양을 따져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하루 평균 약 2,100만 배럴의 원유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데 이는 해상 운송되는 세계 원유의 30~35%에 해당한다. 중동산 원유 대부분이 이 해협을 지나간다고 이해하면 된다. 당연히 중동 원유를 수입하는 모든 국가들이 이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특히 심각한 의존도를 보이는 곳이 한국이다.
이외에 중국, 일본도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지역이다. 유럽도 의존도가 높긴 하지만 그로 인한 충격파가 가장 높은 곳은 단연코 아시아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이 좁은 바닷길에 목을 매다시피 하는 게 현실이다.
이 바다가 봉쇄되는 순간, 석유를 들여올 가장 유력한 수단이 막히는 셈이다. 그에 따른 필연적인 반향이 바로 유가 상승이다. 단순한 상승이 아닌 급상승, 소위 말하는 유가 급등이 불가피해진다는 뜻이다. 국내 언론들이 중동 사태의 발발 때마다 앞다퉈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가능성을 따져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쉽게 풀어보면 이런 거다. 동네 슈퍼에 물건을 공급하는 도매상들의 트럭이 지나는 길이 막혀 더 이상 물건을 가져올 수 없게 되는 상황인 것. 당연히 생필품 가격은 오르게 된다. 석유 역시 생필품에 다름아니다.
생필품 가격이 오르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소비량을 줄이는 일이다. 평소라면 두 개 살 걸 하나로 줄이는 식이다. 근데 원유는 이런 식의 대응이 어렵다는 게 문제다. 가격이 올랐다고 안 쓸 수 없는, 소위 말하는 대체재가 없는 자원인 탓이다.
문제는 또 있다. 유가 폭등에 따른 파장이 그것이다. 국제 유가가 폭등하면 해상 보험료도 덩달아 뛰고, 국가들은 전략비축유를 긴급 투입하거나 선박 운송 경로를 바꾸는 등의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 평상시 이에 대한 준비가 미흡했다면 국가 기반 시설의 일시 정지라는 비극에 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전쟁으로 대변되는 군사적 긴장 역시 가중된다. 호르무즈 해협의 국제학적 의미에 따라 해협 봉쇄 시 미국과 이란, 중국이 즉각 군함을 투입해 조치에 나서게 되는데 이런 상황은 각국이 유사 시 교전을 이어갈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유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군사적 갈등이 초래된다면 그 이상의 유가 상승도 초래될 수 있다.
말 그대로 고래 싸움이지만 여기서 새우들의 수난이 뒤따르게 된다. 한국이 새우란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게 다 에너지 공급망을 다변화하지 못한 원죄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물론 무조건적인 비난은 옳지 않다.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주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시도를 안 해온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세계 시장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것도 사실이고 그렇다보니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 맞다.
원유에 매달리지 않으려 시도한 것이 재생에너지의 전환이다. 태양과 바람은 우리도 갖고 있는 자원 아니든가. 문제는 이로의 전환이 기대만큼 빠르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왜였을까.
냉정하게 보면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게 훨씬 편리해성였을 가능성이 높다. 원유를 활용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갖춰진 구조 내에서 움직이는 것이 실수를 줄이는 방법이었을 테니 말이다.
계속 이렇게 시간을 끈다고 해서 당장 큰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석유가 고갈될 것이란 예측은 검증되지 않은 관측일 뿐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대로 상황을 이어가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런 생각이 켜켜이 쌓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남의 나라 앞바다가 막힐까 두려워 전전긍긍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좀처럼 늘지 않는 것. 그토록 강조하던 에너지 안보는 여전히 남의 손에 쥐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