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제뉴스 이유린 기자] 1000만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서울은 세계적인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메가시티와는 명확하게 차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거대하천 한강, 그리고 메마른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도 그 푸르름을 잃지 않는 도시숲이 그것이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 상당수가 메가시티답지 않은 자연과 도시의 공존을 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서울은 다양한 도시숲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는 착시일 뿐이다. 실제로 해외의 사례와 비교해보면 서울의 녹지 공간이 오히려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후전문 언론 이코리아가 보도한 것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생활권 도시숲은 전국 평균 11.48㎡로 선진국 주요 도시인 뉴욕 23㎡, 런던 27㎡ 등에 비해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서울은 1인당 도시숲 면적이 5.1㎡에 불과할 정도로 도심 속 녹지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런 도시 내 녹지공간의 부족은 단순한 휴식 공간의 부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도시 녹지 공간의 본질적인 위치는 필수적인 기후위기 대응 인프라이자, 시민의 일상적 자원이기 때문이다. 숨 쉬지 못하는 도시는 거주민들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키고, 대기 오염의 해로운 영향을 가중시키는 동시에 도시의 열섬현상을 촉진시키는 거대한 블랙홀에 다름아니다.
◆ 녹지공간 부족한 서울이지만 부자 동네는 예외
전체적으로 서울은 녹지 공간을 많이 보유하고 있진 않지만 모두가 그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부익부빈익빈의 법칙이 충실하게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소위 말하는 부자 동네의 경우엔 모자람 없는 녹지공간, 즉 도시숲이 형성되어 있다는 말이다.
산림청의 '2022 도시숲 통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의 1인당 도시숲 면적은 37.34㎡로 단연코 압도적인 우위를 뽐내고 있다. 그에는 못 미치지만 강남구 역시 18.6㎡로 나쁘지 않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이에 반해 영등포구(3.57㎡), 강북구(2.4㎡), 관악구(1.08㎡)의 녹지 공간은 거론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협소한 상태다. WHO가 권고하는 도시녹지 기준인 1인당 9㎡에 크게 미달하는 수치다. 서울의 평균 1인당 도시숲 면적이 5.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주민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무분은 서초구, 강남구 등 소위 부촌이라 불리는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의 지역불균형이다. 이는 단순히 자치구의 역량에 기인하는 부분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불평등이 반영되었다는 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 불평등이 야기하는 폐해는 무엇일까. 도시숲의 기능을 분석해보면 답이 나온다. 도시숲은 여름철 열섬현상을 완화하고, 미세먼지를 저감하며, 주민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개선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는 사회적 장치다.
서울시 기후환경본부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대규모 녹지가 조성된 지역은 평균 기온이 인접 도심보다 3~5도 낮았으며, 열대야 발생 일수도 눈에 띄게 적었다는 것이 그를 잘 보여준다.
이를 토대로 유추해보면 도시숲이 부족한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이 폭염이나 미세먼지 등 일상적인 환경 위해 요소에 접촉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 일차적으로는 건강상의 문제를 야기시키며 나아가 양극화된 사회 구조로 인한 계층간 소외감에 시달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 경제력에 좌우되는 녹지 공공성, 불균형 개선 시급
도시숲의 공식적인 범위는 주거지 옆 근린공원이나 틈새녹지·가로수 등을 총망라한다. 일상적인 삶속에서 큰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열린 공간이라는 의미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북한산이나 관악산 등이 도시숲으로 분류되지 못하는 이유다.
앞서 확인했듯 도시숲은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서서 인간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도시숲이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어야 하는 이유다. 정부나 지자체가 도시숲 확대를 위해 갖종 제도를 들이미는 이유기도 하다.
산림청은 2027년까지 도시숲 면적을 10% 이상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서울시도 노후공원 리모델링, 학교숲 사업, 도시숲지원센터 지정 등을 통해 공공녹지 확충에 나서고 있다. 시민단체 '생명의숲', '녹색연합' 등은 도시숲이 훼손될 경우 동일 지역 내에 대체 녹지를 확보하도록 강제하는 도시숲총량제 도입을 요구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모두가 사회 구성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왕왕 등장하는 특정 아파트 내 공원 시설의 외부인 접근 금지 같은 뉴스들이 그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물론 이런 사례는 사적재산권의 문제와 맞물려 다툼의 여지가 있음은 분명하지만 이 역시도 경제성 논리에 휘말린 도시숲의 현실을 보여주는 자료라 할 것이다.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며 쓸려나간 숲과 나무들이 적지 않다. 건축법상 아파트 단지 내에 녹지공간을 마련한다고는 하지만 그 공간의 폐쇄성은 오히려 지역민간의 갈등을 촉발시키는 역할만 수행하고 있다.
갈수록 기후위기가 심화되는 지금, 도시숲은 무엇보다 필요한 사회적 자산이 된다. 도시숲은 때론 이 도시의 허파였다가 또 때론 지친 시민들이 쉼을 구하는 쉼터여야 한다. 그리고 갈수록 커져가는 기후위기를 막아내는 뚫리지 않는 방패 노릇도 수행해야 한다.
그 숲이 망가지는 순간 시민의 삶이 기울어지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손을 내줘야 하는 도시숲이 경제 논리에 변색된 채 선택적 진입만을 허용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