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불안 시대, '기후 우울증' 을 아시나요?

  • 등록 2024.10.05 17: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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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위기, 마음까지 병들게 하다


[산업경제뉴스 이유린 기자] 기후 위기는 단지 눈에 보이는 재난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기후 위기 상황을 지켜보며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 개인의 노력으로 위기를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은 사람들의 마음을 서서히 잠식한다.

 
이제 환경을 위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낯설지 않다. 환경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과거에 비해 분명 커졌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정서적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기후 우울증’이다. 기후 위기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용어로, 환경 문제에 대한 불안과 무력감이 쌓여 나타나는 심리적 증상을 뜻한다.

기후 뉴스를 볼 때마다 느끼는 불안,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좌절,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는 감정이 이 기후 우울증의 중심에 있다.

2017년 미국심리학회(APA)에 의해 제시된 이 용어는 개인의 노력으로는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을 거라는 무력감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날씨로 인해 느끼는 우울함과는 다르다. 

이 용어는 공식적인 정신의학적 진단명은 아니며, '기후 불안(Climate Anxiety)', '환경적 비애(Environ-mental Grief)', '외상전 스트레스 장애(Pre Traumatic Stress Disorder)' 등의 용어로도 설명된다.

돌이켜 보면 우리 역시 '기후 우울증'까지는 아니더라도, 기후 변화로 인한 우울감이나 상실감을 느낀 순간이 한두 번은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여름날 신나게 떠난 해수욕장에서 해파리 떼 때문에 물에 들어가지 못했을 때, 매년 할머니 댁에 가면 잡던 다슬기가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을 때, 에어컨 없이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더위에 숨이 막힐 때, 좋아하는 계절의 경계가 무뎌진 느낌이 들 때, 또는 러브버그처럼 생전 처음 보는 외래종 곤충이 갑자기 나타나 불쾌함을 줄 때 말이다.

예전에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사라지고, 낯설고 불편한 것들이 일상이 되며 우리는 어딘가 모르게 상실감과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일상 속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정말 지구가 망해 가는 건 아닐까?”, “앞으로 열심히 살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 하나로 뭐가 바뀔까?”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기후 위기에 대한 불안은 점차 무력감으로 번지고, 그 감정이 심화되면 부정적 정서와 정신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인의 기후 불안 수준 및 특성’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기후불안 수준은 해외와 비교해 두드러지게 높은 것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도 몇 가지 뚜렷한 경향이 나타났다.

첫째는 젊은 세대일수록 기후불안을 더 크게 느끼는 것이고, 둘째는 기후불안이 높을수록 오히려 환경친화적 행동이 증가하는 경향, 즉 순기능적인 면도 함께 확인됐다. 

또한 다수의 연구에서 기후불안을 더 많이 느끼는 집단으로 여성, 젊은 연령층,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 환경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는 저소득층 등이 꼽혔다.

기후 불안이나 기후 우울증은 기후 위기 시대에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증상으로, 우리와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기후 위기 불안은 개인의 감정뿐 아니라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저출산에는 직장, 교육비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디언에 따르면 10명 중 4명의 젊은 사람들이 기후 위기 때문에 아이를 갖는 것을 두려워 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출산을 거부하는 현상까지 있었다. 

2018년 영국에서는 사회운동가이자 뮤지션인 블라이스 페피노가 ‘출산 파업(Birth Strike)’이라는 단체를 결성해, 실질적인 기후위기 대책이 마련되기 전까지 출산을 거부하겠다는 캠페인을 벌였다. 기후 위기에 대한 개인의 고민과 불안이 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과 경각심이 높아진 만큼, 그에 따른 정서적 반응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이제는 환경을 지키기 위한 실천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과 마음의 건강까지 함께 살펴야 할 때다.
이유린 기자 lyl8282@biz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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