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올 봄만 해도 이번 여름을 예측하던 기상학자들의 고민은 주로 폭염에만 맞춰져 있었다. 막상 뚜껑이 열리자 폭염보다는 폭우가 더 문제시되고 있다. 여름의 시작이던 7월, 거의 40도에 육박하던 폭염이 이어질 때만 해도 그 예상이 맞는 듯 보였지만 막상 각종 피해를 야기한 건 폭우였다.
지난 8월 초, 충남 서산에 하루 419.5mm의 폭우가 쏟아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비로 인해 도심은 순식간에 침수됐고, 시민들은 무릎까지 차오른 물속을 헤치며 대피해야 했다. 이에 따라 생긴 누수와 침수 등 시설 피해는 총 166개 학교에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더 심각한 건 인명피해였다.
폭우에 휩쓸린 침수 차량에 타고 있던 50대 남성이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숨졌는가 하면 80대 남성 한 명이 물에 빠져 숨진 사건도 뒤를 이었던 것. 비단 서산에서만의 일이 아니었다. 기상당국의 주의보 발령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인명이 희생될 만큼 폭우의 기세는 맹렬했다.
폭우는 지역을 가리지 않았다. 불과 몇 주 전에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물폭탄’이 터졌고, 그 여파로 지하차도에 갇힌 차량과 시민들이 구조되거나 안타까운 사고로 이어졌다. 각종 사고에서 확인했듯 한반도를 강타한 폭우는 단순히 폭우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많은 양을 기록하고 있다. 시간당 100mm는 예사일 정도로 극심한 국지성 집중호우가 예고 없이 터지고, 그 피해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극단적으로 젖어가고 있는 한반도를 바라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 규칙적이던 장마 증발하고 불규칙한 기상 재해 빈번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찾아들던 비는 때론 반갑기까지 하던 존재였다. 달궈진 대기를 식히고 메말라가던 논과 밭을 적심으로써 가을의 풍작을 예고하는 바탕이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브레이크 타임으로까지 치부되던 것이 바로 장마다.
다소 번거로운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크지 않았다. 평균적으로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장마는 비교적 예측 가능했고, 일정한 강수량을 유지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대처 가능한 규칙성을 지닌 현상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후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장마의 성질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장마는 짧아지고 강수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2023년 이후 장마 기간은 평균보다 30% 이상 짧아졌지만, 하루 강수량은 2배 이상 늘어난 지역도 있었다. 이는 대기 중 수증기량 증가와 관련이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대기 온도가 상승하면, 공기 중에 머무를 수 있는 수증기량도 늘어난다. 그 결과, 한 번 비가 내릴 때 쏟아지는 양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는 것이다. 이를 장마라 부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날 정도로 불규칙성이 커진 것. 몇몇 기상학자들은 지금의 장마를 폭우성 기후에 가깝다고 주장할 정도다.
이는 사실에 가깝다는 것이 여러 현상뜰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온대성 기후권에서는 쉬이 자라지 못하는 아열대성 작물들이 중부 지방에서 재배될 정도로 한반도의 기후 변화는 극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콜에 가까운 국지성 호우의 잦은 발생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기후 전문가들의 증언이다.
기후 변화를 자초한 것이 누구인지를 헤아려보면 그를 마냥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만 중요한 건 그로 인한 피해 규모가 갈수록 커져간다는 점이다. 적절한 대책 마련이 없다면 이로 인한 피해 규모는 해마다 늘어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 저탄소 식단, 에너지 절약 등 개인 실천 뒤따라야
폭우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에 따른 대처가 불가능하다시피한 도시 인프라다. 서울, 대전, 부산 등 주요 도시에서는 하수도 역류, 지하차도 침수, 지하철 운행 중단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그를 잘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지하 공간의 침수다. 직접적인 인명 피해로 이어질 확률이 큰 일인 때문이다.
2022년 서울 신림동 반지하 침수 사고, 2023년 청주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처럼 다수의 인명이 희생된 비극적 사고를 불러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결국 도시 인프라의 부실에서 기인된 일이다. 지금까지의 기준으로 본다면 부실이라는 용어를 들이댈 수준은 아니다. 기존의 도시 설계는 과거의 평균 강수량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라지는 기후 현상을 감당하기는 역부족이다. 지금처럼 시간당 100mm 이상의 폭우가 내릴 경우 대응이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후적응형 도시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배수시설을 확장하는 것을 넘어, 도시의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접근이다.
수시로 발표되는 언론의 호들갑을 고려해보면 지금의 기후변화는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폭우, 폭염, 가뭄, 태풍 등 극단적 기후현상이 일상화되면서, 시민들은 직접적인 피해를 체감하고 있다. 특히 폭우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재난으로 자리 잡았다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기구인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기후변화가 강수 패턴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아시아 지역은 특히 집중호우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응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는 호우 때마다 정부는 중대본 비상단계를 격상하고, 하천 통제 및 열차 운행 중단 등 긴급 대응책을 내놓고 있지만 그조차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지금의 이상 기후가 일상적인 행사로 고착화된다면 결국 필요한 건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다.
문제는 그를 위한 원활한 움직임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산과 인력의 한계, 기존 도시 구조의 제약, 시민 인식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예 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환경부는 2050 탄소중립 전략의 일환으로 ‘기후적응형 도시’ 구축을 추진 중이며, 저지대 침수 위험지역에 대한 사전 경고 시스템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본질적인 해결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대응은 단기적 조치로는 부족하다”며, 교육·법제도·기술개발 등 전방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번이라도 폭우 피해를 입은 이라면 내리는 비가 무서울 수밖에 없다. 정부의 대응을 신뢰하지 않는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침수 위험지역을 모니터링하고, SNS를 통해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지금의 기류가 정상적일 수는 없다. 조속한 대응책 마련으로 국민들이 불시의 기후 재난에도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아울러 국민 개개인의 노력 또한 필연적이다. 저탄소 식단, 음식물 쓰레기 감축, 에너지 절약 등 개인의 실천이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한 축이기 때문이다.
기후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지금의 이상 기후가 지속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한반도는 더 이상 기후 재난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지금, 인식의 변화와 정책의 연계로 물폭탄에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