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온 쓰레기, 바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를 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불과 5년 후면 이를 저장할 시설이 사실상 무용지물에 불과해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국내 주요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은 2030년부터 순차적으로 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극단적인 경우, 핵폐기물 처리를 하지 못해 원전 시설의 가동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사태로까지 치닫지는 않겠지만 현재 웅영되고 있는 저장 시설의 여명이 그리 길지 않은 점을 고려해본다면 신속한 조치는 필연적이다. 이에 정부는 특별법 제정을 통해 해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성과 도출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 안전성 높은 건식 저장고는 월성 원전 한곳뿐
현재 총 25기의 원전을 가동 중인 한국은 매년 700톤에 달하는 사용 후 핵폐기물을 배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핵 폐기물은 재처리를 통해 전략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를 독자적으로 재처리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에 원전 내부 저장조에 보관하는 것으로 폐기물 처리를 하게 된다.
문제는 저장 시설의 여유 공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의 추세가 이어진다는 가정 하에서 판단해보면 2030년 전남 영광의 한빛 원전을 필두로 한울은 2031년, 고리는 2032년경 저장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된 원전들은 모두 습식 저장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물을 이용해 냉각하는 방식으로 우리 원전 대부분은 이 방식을 채택 중이다.
습식에 비해 운영 비용이 저렴하고 용량을 늘리거나 장기적으로 관리하기도 쉽다는 장점을 지닌 건식 저장 시설은 국내에서는 월성 원전 한 곳뿐인 상황. 그조차도 제한적 운영에 불과하다.
당장 문제되는 것은 저장 공간 확보지만 습식 저장 방식 역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습식 저장은 냉각수와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장기 저장에는 부적합할 뿐 아니라 사고 발생 시 위험성이 높다는 치명적 단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원전의 안정성 측면에서 본다면 습식보다는 건식이 더 효율적이다.
원전을 운영하는 국가들 상당수가 건식 저장 시설을 운용하는 이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영구 처분 시설을 확보함으로써 국민 안전을 꾀하고 있는 형편이다. 대표적인 국가가 핀란드다. 핀란드는 핀란드는 2023년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 처분장 ‘온칼로(Onkalo)’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시설은 500m 지하 암반에 폐기물을 영구 격리하는 방식으로, 20년 이상의 공론화와 기술 검증을 거쳐 완공됐다.
스웨덴은 2035년 완공을 목표로 사용후 핵연료 영구 처분 시설을 만들고 있으며 독일과 스위스는 건식 저장조를 운영 중에 있다. 영구 저장 시설은 고사하고 건식 저장소조차 찾기 힘든 우리로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만 건식 저장소 확보조차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 첫걸음부터 난관.. 부지 선정과 주민 수용성 확보 쉽지 않아
습식 저장 시설에 비해 이점이 많은 건식 저장 시설이지만 이에 대한 여론은 오히려 좋지 못한 상태다. 이유는 간단하다. 습식에 비해 장기 저장이 훨씬 더 용이한 건식 저장 시설이 들어서면 사용후 핵연료가 영구 보관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때문에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은 건식 저장소 설치에 대해 강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경북 울진, 전남 영광 등 원전 밀집 지역에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일부 지자체는 원전 수명 연장 자체를 거부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대표적 혐오시설인 원전 시설의 지역 내 존립을 환영하지 않는 것은 따지고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부지 선정과 주민 수용성 확보에 애를 먹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시설 설치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곧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과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주민 수용성 확보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영구 처분 시설을 운용하고 있는 핀란드나 스웨덴도 이 과정을 거치는데 10년 이상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란 뜻이다. 문제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저장 시설의 포화가 머지 않은 지금, 최대한 그에 소요되는 기간을 단축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주민들의 합의를 얻어내는 일이 필수, 정부는 관리시설 유치지역에 대해 공공기관 지방 이전, 지역주민 우선 고용, 지역발전사업 지원 등을 포함한 보상 계획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주민투표와 공론화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또다시 부지 선정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미 유사한 사례를 수차례에 걸쳐 경험한 바 있어 그런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닌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1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저장 시설 구축에 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중간저장시설을 2043년까지, 최종처분시설을 2050년까지 운영한다는 것. 이외에 관리위원회 설치, 부지 선정 절차, 주민 의견 수렴, 기술개발 및 전문인력 양성 등의 내용을 포함시킴으로써 저장 시설 포화에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시가 시급한 상황이니만큼 법안 등장과 함께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하지만 그조차도 여의치 않다. 현재는 연구용 지하연구시설 부지 유치를 위한 공모 단계에 머무는 수준이다. 태백시가 단독으로 응모한 것에서 보듯 지역의 호응은 차갑다 못해 냉정하기까지 하다.
예비타당성조사와 기술 실증도 초기 단계에 멈춰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진행 상황이라면 실질적인 처분시설 건설까지는 최소 30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을 정도로 상황은 부정적이다.
결국 처음부터 우려한 주민 수용성 확보가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한 가운데, 기술적 지원도 쉽지 않다는 자조마저 나오고 있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의 기술수준 평가에 따르면, 국내 기술력은 선진국 대비 운반 83.8%, 저장 79.6%, 부지 선정 62.2%, 처분 57.4%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104개 요소기술 중 33개는 아직 확보되지 않아 기존에 보유한 기술을 활용해 저장 시설을 만들어야 하는 지경에 처해있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기술력과 제도적 기반, 사회적 합의 측면 어느 하나 만족스럽지 못한 현 상황을 조기에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원전들은 크나큰 문제를 양산하는 암세포로 자라게 될 것이다. 원전 확대 정책을 추진하면서 폐기물 처리 대책이 미비한 것은 무책임한 접근이라는 환경단체들의 주장을 귀담아 들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