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의 벽면, 바쁜 하루의 틈 사이로 고개 내민 작은 푯말 하나가 나를 멈춰 세웠다.
“무연휘발유란 납 성분이 없는 휘발유를 말합니다.”
짧고 단순한 문장이었지만, 그 안엔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 스며있었다. 그랬다. 언젠가 기억조차도 까마득한 어느 시절엔 납이 들어있는 휘발유가 존재했음을 반증하는 그 문구처럼 한때 휘발유는 독을 품고 달렸고, 우리는 그 독을 진보라 불렀다. 익숙한 기술의 이름 뒤에 숨어 있던 낯선 진실은, 우리가 무엇을 대가로 삼아 발전을 선택해왔는지를 되묻게 했다.
그 문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기술은 언제나 우리를 더 빠르게, 더 멀리 데려다주지만 그 여정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희생이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 때문이었나 보다. ‘무연휘발유’라는 단어는 단순한 연료의 이름이 아니라, 한 시대가 남긴 흔적이자, 우리가 무엇을 포기하며 진보를 선택했는지를 되묻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자동차가 도시의 심장을 대신해 뛰던 시절로 향했다. 엔진은 요란한 숨을 내쉬며 거리를 질주했고, 사람들은 그 속도를 진보라 불렀다. 하지만 그 진보의 엔진은, 보이지 않는 독을 품고 있었다. 그 독은 사람들의 욕심이 만들어낸 기형아였다.
1920년대, 자동차 산업은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었다. 그 속도에 발맞추기 위해 기술자들은 엔진의 ‘노킹’ 현상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 해답으로 등장한 것이 테트라에틸납(TEL)이라는 화합물이었다.
역사의 경험에서 드러나듯 납은 연료의 성질을 바꾸어 엔진을 더 부드럽게, 더 강력하게 작동하게 만들었다. 겉으로 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그 성능 뒤에는 침묵 속에 스러진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익히 알겠지만 납은 맹독이다. 피부에 닿는 것만으로도, 공기 중에 흩날리는 것만으로도 신경은 마비되고 생명은 흐려졌다. 공장 안에서는 납중독으로 쓰러진 이들이 있었고, 그 위험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에틸’이라는 이름으로 납의 존재를 감췄다. 더 안전한 대안이 있었지만, 특허를 낼 수 없다는 이유로 외면당했다. 기술은 문제를 해결했지만, 그 해결 방식은 인간의 안전과 윤리를 뒤로 미뤘다.
이러한 선택은 오늘날에도 반복된다. 인공지능은 사용자 데이터를 동의 없이 학습하며 사생활을 침범하고, 자율주행차는 사고의 순간 누구를 살릴지를 결정해야 하는 윤리적 딜레마에 빠진다. 딥페이크 기술은 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흐리며,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잃는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그 속도가 인간의 판단을 앞질러버릴 때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 무연휘발유의 역사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1993년 1월 1일, 한국은 납을 휘발유에서 지웠다. 바로 그날부터 유연휘발유 사용을 금지하고 무연휘발유 사용을 의무화했던 것. 단순하게 보면 새로운 기술로의 전환을 의미할 테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단순한 기술의 전환이 아니라 인간과 환경을 위한 조용한 각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 우리는 ‘무연휘발유’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우리가 주유소에서 만나는 모든 휘발유가 이미 무연인데도 그 이름은 남아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잘못을 잊지 않기 위한 작은 경고인 걸까. 아니면 기술이 인간을 해치지 않도록 우리가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다짐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연’이라는 이름은 단지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기술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힌트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기술을 감시하고, 책임을 묻는 새로운 언어를 갖게 되었다. 우린 그걸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라고 부르기로 했다.
오늘날 에너지 산업은 단순한 공급자에서 벗어나, 지속가능성과 책임을 요구받는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 ESG는 그 변화의 언어다.
그 언어에 따르면 무연휘발유의 도입은 환경을 위한 선택이고, 납을 제거한 결정은 사회적 책임의 실천으로 해석된다. 이제 기업은 단지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넘어, 그 기술이 지속가능한가, 사람을 해치지 않는가, 그리고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는가를 증명해야 한다.
최근 정부는 에너지 전환을 위한 ESG 과제를 제시하며 재생에너지 확대, 탄소중립 실현, 순환경제 생태계 조성 등 보다 근본적인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과거의 ‘무연’이라는 선택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