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제뉴스 이유린 기자] 탄소중립을 향한 전 세계적인 흐름에 동참하려는 국내 기업들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탄력이 붙고 있다. 태양광·풍력으로 대변되는 신재생에너지 기술 확보가 차세대 에너지 전쟁의 필수 요건이 되면서 이들 기술의 국산화 전략에 사운을 거는 기업들이 느는 것은. 더없이 반가운 일이지만 그 속을 들춰보면 인정하기 싫은 진실이 드러난다.
겉으로는 번듯한 국산 설비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핵심 부품 대부분이 외산에 의존하는 구조적 취약성에 허덕이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때문이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어느 산업이건 부품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의 자체적인 생산에 매달리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 문제다.
2024년 기준 태양광 모듈 내 셀·잉곳 등 주요 부품의 90% 이상이 수입 제품이며, 상당수는 중국에서 조달된 것일 정도로 의존도가 극심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풍력 터빈의 기어박스, 블레이드 등도 유럽 등지에서 공급받고 있어 상황은 별다를 바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설비 전체를 국산화했다고 말할 수 있어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외국 기술에 기대고 있다는 게 냉정한 현실”이라고 말할 정도로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허울뿐인 기술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 의존도 80% 넘겨…기술 자립성 ‘사각지대’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설치된 신재생에너지 설비의 핵심 부품 수입 의존도는 83%에 달한다. 태양광 모듈의 경우, 패널 자체는 국내에서 조립하지만, 그 핵심을 이루는 셀, 잉곳, 웨이퍼 등은 대부분 중국산이다. 풍력 부문은 부품 수가 많고 정밀기술이 요구되기에 국산화율이 10%에도 못 미친다.
한 에너지 공공기관 연구원은 “주요 부품이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가격은 물론 납기까지 외부 변수에 흔들린다”며 “자립적 에너지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선 핵심 소재와 정밀 가공 기술 확보가 선결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 2022년 하반기다.
당시 글로벌 물류난과 미·중 갈등이 겹치며 태양광 패널의 국내 반입이 지연되었는데 이 여파로 일부 지자체의 설치 사업이 일정에 큰 차질을 빚었고, 계약 단가도 수차례 변동됐던 것. 자칫 사태가 장기화되었다면 사업 지연으로 인한 손실은 눈덩이 굴리듯 커졌을 것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에 대해 한 민간 에너지 전문가는 “이대로라면 재생에너지 보급률보다 공급망 리스크가 더 빨리 다가올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특히 에너지 안보가 국가 전략의 핵심이 된 지금, 기술과 부품의 주권 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덧붙였다.
◆ 싹 틔우는 국산화 기류..에너지 주권 위해서 서둘러야
다행히 국내에서도 국산화의 희망적인 움직임이 하나둘씩 보이고 있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핵심 부품 기술의 자립화를 위한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그동안 해외 의존도가 높았던 풍력·태양광 설비 분야에서 국산 기술 기반의 개발 사례들이 잇따라 보고되며, 에너지 산업 생태계의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사례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주도한 12MW급 풍력 블레이드 국산화 프로젝트다. 연구원은 독자 설계 플랫폼 ‘KIER-BladeFORGE’를 활용해 초대형 블레이드를 설계하고, 설계-제작-시험까지 가능한 통합 인프라를 국내 기술로 구축했다. 이 블레이드는 덴마크 인증기관인 DNV로부터 국제 설계 인증도 획득하면서 기술 경쟁력을 입증했다.
전력변환장치(PCS)에 대한 국산화 시도도 활발하다. 두산에너빌리티와 LS일렉트릭 등 주요 기업들이 고출력 터빈용 전력변환 기술 개발과 실증을 추진하며 상용화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태양광 분야에서는 차세대 고효율 태양전지로 주목받는 ‘탠덤셀’ 기술 확보에 속도가 붙고 있다. 정부와 민간기업이 공동으로 R&D를 추진해 2023년 기준 1,000억 원 규모 이상의 투자를 집행했고, 세계 최고 효율(35%)을 목표로 파일럿 공정 설계와 소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건물일체형 태양광(BIPV) 기술도 고도화되고 있다. 건축자재로서의 안전성과 태양전지로서의 성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도록, 내화 성능과 구조 안전 기준을 강화했고, 시범단지 조성도 본격 추진되고 있다. 이는 도시형 태양광 확산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신재생에너지 확산의 또 다른 축인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에서도 열관리 부품 등 핵심 기술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2023년에는 배터리팩 온도 안정화를 위한 고효율 열관리 장치가 개발되어, ESS뿐 아니라 전기차와의 기술 연계성도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 국산화 성공과는 별개로 경쟁력 확보에 공 들여야
절대적으로 해외에 의존하던 구조를 탈피하는 사례들이 는다는 것은 곧 국내 산업 생태계 내에서 설계–제조–실증–양산까지 아우르는 기술 자립의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만족하기에는 이르다. 냉정하게 보면 이는 종착점이 아닌 과정상의 성공에 불과한 탓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산화 성공 사례는 기술적 타당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지만, 상용화와 시장 경쟁력 확보는 별개의 문제”라며, “R&D 투자뿐 아니라 공공 조달과 규제 완화가 동시에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현재 정부는 ‘에너지산업 고도화 로드맵’을 통해 2030년까지 핵심 부품 국산화율 50% 달성을 목표로 잡고 있지만, 민간의 투자 여건과 중소기업 역량 강화를 위한 체계적인 지원이 수반되지 않으면 공허한 선언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기차, 반도체, 2차전지 사례가 보여주듯 부품과 소재 기술을 내재화하지 못한 산업은 외풍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린 전환’이 지속 가능하려면, 설비보다는 그 안을 구성하는 기술과 부품에 집중해야 한다. 겉도 속도 모두 우리의 것으로 메워진 설비를 가지는 것은 곧 온전한 우리의 에너지 주권을 담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