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제뉴스 민경종 기자] 눈 가닿는 어느 한 곳조차 푸르지 않은 곳이 없다. 사방이 초록으로 물든 이 광경이야말로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어진다. 오랜만에 벗어난 도시가 새삼 생각보다 더 끔찍했음을 알게 된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지만 그조차도 괜찮았다. 그만큼 눈앞의 초록은 더 이상 초록일 수 없는 선명하기 그지 없는 그런 초록이었으니까.
계절이란 게 이렇게 무섭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원망스러운 계절이었는데 그 잠깐 사이 달라진 공기가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그렇게 초록의 계절이 다가왔지만 때론 그 초록이 반갑지 않은 경우도 있다. 산과 들에서 발견되는 초록과는 또 다른 물 위의 초록이 그것이다. 녹조 이야기다.
초여름인 6월 즈음이면 고개를 드는 녹조는 기온이 높고 일조량이 많으며 강수량이 적은 시기에 기승을 부리는 자연현상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뭔가 잘못 이야기했다는 느낌이 든다. 최근의 광범위한 녹조 발생을 그저 자연현상이란 말 한마디로 책임소재를 넘겨버린 것 같아서다.
기본적으로 녹조가 자연적인 현상인 것은 맞다. 시아노박테리아, 즉 남조류가 자신들의 번식에 최적인 상황을 틈타 세력을 넓히는 일이니 자연현상이라고 말하는 게 틀린 건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번식하는 데 있어 ‘최적인 상황’을 만든 주체가 누구냐는 점이다.
높은 기온, 많은 일조량. 적은 강수량 하에서 빠르게 번식한다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다 치자. 그건 인간이 손댈 수 없는 부분이니 자연현상이라는 것일 테지만 이젠 그 말의 진위를 의심해야 옳다. 앞서 언급된 기후 조건들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온실 가스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연구는 녹조 현상이 기후위기와 인간의 탄소 발자국이 만들어낸 복합적 재난임을 실토하고 있다. 지구 평균기온이 1.5℃ 이상 상승할 경우, 녹조와 같은 생태계 교란 현상이 더욱 빈번하고 강력해질 것으로 예상하는 목소리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듯 인간의 탐욕이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녹조는 그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원래의 모습으로 남겨만 두었다면 이토록 짙푸른 녹색띠를 볼 일은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흐르던 물길의 방향을 억지로 뒤틀고 인간의 편의를 위해 바닥을 뒤집는 일은 없었어야 했다. 홍수 예방과 수자원 확보란 명목일 테지만 그조차도 인간의 편리를 확보하기 위한 억지주장에 불과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를 직접 목격한 민족이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 이야기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공적인 설비는 결국 유속 저하와 영양염류 축적을 이끌었고 그를 먹이 삼아 남조류들이 기승을 부려왔지 않은가.
처음부터 많은 환경단체들이 그 위험성을 알렸지만 제대로 귀 기울인 이는 없다. 적어도 정책을 입안하고 설계하는 이들 중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생긴 게 지금의 녹조다. 그것도 시도 때도 가리지 않는 왕성한 식욕을 지닌 녹조들, 그들이 우리의 하천을 잠식하고 있다.
그 피해는 그렇게 잠식된 하천을 터전 삼는 이들에게로 향한다. 이 물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그렇고 공기 중으로 떠다니는 녹조의 독소를 흡입해야 하는 인근 주민들이 그렇다. 녹조로 뿌옇게 변해버린, 산소조차 희박한 물속에서 살아야 하는 생명체들은 무슨 잘못일까.
지금 와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생각은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을 놓고 너는 못했고 나는 잘 했다 식의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시급한 건 앞으로 그런 실책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의 후손에게 필요한 건 건강한 환경이다. 녹조 라떼를 더 이상 ‘풍자’가 아닌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정책을 바꾸고 인식을 바꾸고 행동을 바꿔야 한다.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될 때까지 하고 또 해야 하는 말이다. 그게 변화를 불러올 수만 있다면 수백, 수천번이라고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