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RE100(재생에너지 100%) 캠페인이 기술적·경제적 제약에 직면하면서 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CF100(탄소무배출 에너지 100%) 전략이 부상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은 원자력, 수소, 탄소포집 기술 등을 포함한 CF100 중심의 에너지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정책 재검토와 산업계의 대응이 본격화되고 있다.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지던 RE100 대신 CF100에 눈을 돌린 것은 단순한 에너지 전략의 변화가 아니라, 한국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경쟁력과 탄소중립 실현 가능성을 좌우할 중대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 RE100 주도 단체도 오류 인정하고 대안 마련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글로벌 캠페인으로, 2014년 영국의 비영리단체 클라이밋 그룹이 시작했다. 반면 CF100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모든 에너지원—원자력, 수소, 탄소포집 기술 등을 포함—을 활용해 탄소중립을 달성하자는 전략이다. RE100보다 기술적 현실과 에너지 안보를 고려한 접근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재생에너지 전략을 구사하고 잇는 대다수의 국가들이 RE100을 통한 탄소중립 구현에 나서고 있지만 생각보다 달성률은 높지 않다. 기존 자원에 비해 높은 경제성, 사회적 합의 구축의 어려움, 정책과 규제의 난이도 등으로 인해 일부 국가에서는 이를 의도적으로 방치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을 정도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 바로 CF100이다. 다양한 국가와 기업들이 RE100에 비해 현실적 제약이 덜한 CF100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심지어는 RE100의 개념을 처음 도입한 클라이밋 그룹조차도 자신들의 캠페인을 수정하려는 모양새를 내비치고 있다.
클라이밋 그룹은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재생에너지와 원전, 수소 등 무탄소 에너지를 100%, 24시간, 1주일 내내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24/7 CFE' 캠페인(CF100)의 개념을 구체화하고, 글로벌 기업들의 동참을 유도하기 위한 계획들을 내세우고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처음으로 RE100 캠페인을 명명하고 주도한 단체가 사실상 RE100의 오류를 자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재생에너지 확대의 한계점을 인정하고 원전을 포함한 무탄소 에너지의 소비로 온실가스를 저감하는 현실적인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RE100의 간헐성 문제를 보완하고 탄소 저감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흐름은 다양한 다국적 기업과 국가들에게서도 발견되고 있다.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등 글로벌 기업들도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과 원전 인수에 적극 나서며 CF100 전략에 동참하고 있는가 하면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원자력과 탄소포집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며 CF100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EU는 프랑스, 핀란드 등 일부 국가가 원자력을 탄소중립 수단으로 인정하며 CF100적 접근을 확대하고 있으며, 일본은 원자력 재가동과 수소 기술 개발을 병행하는 혼합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이 RE100에 가입했지만, 재생에너지 공급 부족과 높은 비용, 송전 인프라 제약 등으로 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태양광 발전소와 전력 구매 계약(PPA)을 체결했지만, 국내에서는 CF100 기반의 원자력 전력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에서는 “RE100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CF100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 일각에서도 CF100을 향한 전략을 마련하기 시작하고 있다.
◆ 궁극적 목표 달성 위해선 RE100에 목 매선 안 돼
정부는 2050 탄소중립 목표를 유지하면서 원자력 확대와 수소경제 활성화를 통해 CF100 방향성을 강화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RE100 산업단지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총 3조 원을 투입해 전남, 울산, 충북 등 3개 권역에 재생에너지 기반의 첨단 제조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재생에너지 100% 자립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일부 산단에는 LNG 등 보조전원이 필수적으로 포함돼 있어, RE100이라는 명칭 자체가 현실과 괴리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탄소중립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의 다양성과 정책 유연성이 필요하다”며, “RE100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CF100을 포함한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정부는 이를 반영해 CF100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CFE 프로그램’ 개발과 인증체계 마련, 국제 공동연구 확대 등 한국형 CF100 추진계획도 병행하고 있다.
한편, 일부 환경단체는 CF100이 원자력 중심으로 흘러갈 경우 안전성과 폐기물 문제를 간과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CF100 추진 과정에서 에너지 믹스의 균형과 사회적 수용성 확보를 위한 공론화 절차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RE100은 기후위기 대응의 이상적 비전이었지만, CF100은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드는 전략이다. 클라이밋 그룹의 정책 전환과 글로벌 기업들의 행보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실질적 접근을 보여준다. 한국 역시 이 흐름에 발맞춰야 하며, 산업단지 조성, 제도 정비, 국제 인증 연계 등 에너지 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