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 전환이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탄소중립이란 대명제 달성을 위한 필연적인 움직임이지만 이 과정에서 불거지는 시행착오로 인한 잡음이 적지 않다. 특히 문제시되는 것이 민간 주도의 전환방식이다. 이로 인해 에너지의 공공성과 민주적 통제가 갈수록 약화되고 있어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 목소리의 한가운데에 놓인 것이 바로 ‘공공재생에너지’다. 공공재생에너지는 ‘재생에너지를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것을 넘어, 에너지 전환의 과정과 결과가 모두에게 열려 있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지향하는 개념이다. 투명한 재생에너지 생산과 배급, 사용까지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개념이지만 아쉽게도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공공재생에너지는 그 선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 개념 자체가 무르익을 정도로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현재 문제시되고 있는 민간 주도의 재생에너지 전환에 대응하기 위한 도구적 개념으로서 사용된 때문이다. 안타까운 대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논의가 의미를 잃을 정도는 아니다. 그만큼 민간 주도의 재생에너지 전환이 안고 있는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 한국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97% 민간 기업이 소유
현재 한국을 비롯한 다수 국가에서 시도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전환은 대부분 민간의 손에 맡겨지고 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중 약 97.7%를 민간 기업이 소유하고 있으며 해상풍력의 경우, 전체 허가 물량의 90% 이상이 외국 자본 또는 대기업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 그를 잘 보여준다.
정부의 정책 설계, 전력산업 구조, 자본 조달 방식, 국제적 추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전기요금 인상, 지역 갈등, 생태계 훼손 등 민영화된 재생에너지의 부작용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그로 인한 부작용이 점점 더 커질 것임은 명확하다. 그럼에도 쉽게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대부분 국가에서 재생에너지 초기 확산은 정부가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을 통해 민간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게 첫 번째 이유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발전차액지원제도(FIT),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등은 민간 사업자가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였고, 그 결과가 민간 중심 구조의 고착화다.
전력산업 구조 개편과 민영화의 여파 역시 이를 부추긴 요소다. 2001년 한국은 전력산업 구조 개편을 통해 발전 부문을 한국전력에서 분리하고, 민간 기업의 참여를 허용한 바 있다. 이로 인해 가스발전소의 60%,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90% 이상이 민간 소유가 되었고, 자연히 공공부문의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초래한 또 다른 이유는 역시나 돈이다. 재생에너지 전환 자체가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사업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해상풍력 등 대형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수조 원대의 초기 투자비용이 필요해. 정부는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택했고, 이는 대기업과 해외 자본의 진입을 필연적으로 촉발했다. 예컨대 1GW 해상풍력에 약 6조 원이 소요되는데, 이 구조는 민간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사업모델로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러한 요소들이 통합적으로 작용하며 재생에너지 전환에 민간사업자를 불러모았던 것.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앞으로도 지금의 구조는 현 상태를 유지할 것임이 분명하다. 정부의 정책과 민간의 자본이 서로의 이익을 공유함으로써 발생하는 민관 협동 체제를 마냥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가 발생한다면 당연히 제고가 필요해진다. 그것이 일반 국민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 공공화의 씨앗 한국에서도 싹을 틔우다
“재생에너지라는 이름 아래 주민들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습니다. 환경영향평가도 부실하고, 수익은 지역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전북 고창에서 해상풍력 설치를 반대하는 주민대책위 관계자의 고백이다. 이런 고백이 비단 고창에서만 발견되는 일은 아니다. 주민 동의 없는 사업 추진으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법적 분쟁과 사회적 갈등은 너무도 익숙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허가된 해상풍력 프로젝트의 약 90% 이상이 외국 자본 또는 대기업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지역 주민의 의견이 배제된 채 사업이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지역에선 주민 동의 없이 환경영향평가가 강행되었고, 갈등은 행정소송으로까지 번지기도 했을 정도로 일상에 가까운 모습이다.
지역주민들은 왜 그토록 반대하고 나선 걸까. 그들의 주장은 명확하다. 에너지가 시민의 삶을 위한 공공재가 아니라, 투자 수익을 위한 상품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터전이 망가지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보다 앞선 길을 밟았던 해외에서도 수 차례 경험했던 과정이다. 1980년대 영국은 대처 정부 시절 전력 산업을 민영화했지만, 그 결과 에너지 가격 급등과 연료 빈곤층 증가라는 부작용을 겪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최근 노동당을 중심으로 에너지 재공영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만큼 에너지 민영화의 폐단은 쉬이 풀리지 않는 문제다.
물론 모두가 다 그랬던 건 아니다. 영국의 오랜 라이벌인 프랑스는 에너지 공기업 EDF를 중심으로 전력 체계를 공공 부문에서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2022년 유럽 에너지 위기 당시, 프랑스는 전기요금 인상폭을 4~15%로 제한할 수 있었지만, 민영화 기조를 유지한 독일·영국 등은 60% 이상 인상되며 시민들의 부담이 폭증한 것이 민영화의 폐단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프랑스의 성공, 영국, 독일의 실패는 공공재생에너지 전환의 방향성과는 별개로 그 방식 역시 무시못할 요소라는 것을 보여주는 시금것에 다름아니다. 공공성과 민주적 통제의 약화가 점점 두드러지는 우리의 민간 중심 전환 구조를 마냥 방치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공공성과 주민참여, 정의로운 이익 배분 충족돼야
다행스럽게도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이에 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개선의 방향을 찾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18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 ‘세계는 지금, 공공재생에너지’ 현장에서 나온 의견들이 그를 증명한다. 공공재생에너지의 가능성과 입법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다룬 이날 심포지엄에서 첫 발표자로 나선 션 스위니(에너지민주주의노조네트워크)는 “30년간 민자 중심의 에너지 전환은 실패했다”며, 멕시코·콜롬비아·뉴욕주 등 세계 각국에서 공공 소유 강화 흐름이 확산되고 있음을 전파했다.
![유럽의 민영화 실패 사례를 설명하는 베라 웨그만 국제공공노련연구소 소장 [사진=공공재생에너지연대]](http://www.biznews.or.kr/data/photos/20250625/art_17504003161231_b3f2c4.jpg)
베라 웨그만 국제공공노련연구소 소장(사진)은 유럽의 민영화 실패 사례를 소개하며, “에너지 시장 자유화는 가격 인상과 시장 집중을 초래했고, 프랑스처럼 공공이 전력망을 소유한 국가만이 위기 속에서도 시민을 보호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 역시 “공공이 운영하는 재생에너지가 전환의 속도와 정의, 비용 분배 측면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강조하며 공공재생에너지 전환의 당위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바로 제주도의 ‘공풍화 운동’이다.
공공화 모델의 대표 사례로 거론되는 ‘공풍화 운동’은 주민들이 출자해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고, 수익의 일부를 지역 복지기금으로 환원하는 특징을 띠고 있다. 공공성과 주민참여, 정의로운 이익 배분이라는 공공재생에너지의 삼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어 공공재생에너지의 장점을 보여주기에 최적화된 사례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첨언이다.
공공재생에너지 도입에 앞장 서고 있는 정세은 공공재생에너지포럼 대표는 지난 3월 8일 전기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공재생에너지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피력했다.
그는 “재생에너지가 빨리 늘어나는 것만으로는 성공이라고 할 수 없다. 공공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그 비용은 결국 국민이 지게 된다”면서 “공기업은 국민의 것이며, 공공이 주도하는 에너지 전환이야말로 지속가능하고 질서 있는 길”이라고 강조하며 조속한 공공재생에너지의 도입을 촉구했다.
재생에너지의 공공화는 단지 ‘누가 발전소를 갖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통제하고, 누가 이익을 향유하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기술적 과제가 아니라 사회적 정의와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공공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에너지 전환의 방향은 정해졌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이 땅의 빛과 바람과 공기를 통해 만들어진 에너지는 누구의 것인가.’ 더 늦지 않게 대답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주권을 책임질 첫걸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