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 'KSTAR'의 모습. [사진=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http://www.biznews.or.kr/data/photos/20251044/art_17616368719374_549b18.jpg)
[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수소 1g으로 석유 8톤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인공태양’ 기술이 차세대 청정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다. 태양의 핵융합 원리를 모방한 이 기술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막대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어, 탄소중립과 에너지 고갈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꿈의 에너지원’으로 불린다.
세계 각국이 이 기술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하다. 이에 한국 역시 독자 기술 개발과 실증을 위한 기반을 꾸준히 다져왔다. 최근에는 전남도가 정부의 핵융합 실증로 및 연구시설 유치를 추진하며, 국내 핵융합 상용화를 위한 거점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기술적 진전을 넘어 지역 에너지 산업의 미래를 견인할 전략적 선택으로 평가받고 있다.
◆ 태양을 닮은 에너지, 핵융합의 잠재력과 과제
핵융합은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융합해 헬륨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개념으로 태양에너지가 만들어지는 원리와 비슷해 ‘인공태양’이라 불린다. 바닷물 속에 풍부한 수소와 리튬을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자원 고갈 우려가 없고, 이산화탄소나 미세먼지 같은 유해 물질을 배출하지 않아 탄소중립 실현에도 유리하다.
여기에 더해 핵융합은 기존 원자력 발전과 달리 연쇄 반응이 없어 폭발 위험이 낮다. 연료 공급을 중단하면 즉시 반응이 멈추는 구조 덕분에 안전성도 높다.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날씨나 계절에 영향을 받지 않고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결과적으로 핵융합은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전력 생산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하지만 기술 상용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핵융합 반응을 유지하려면 섭씨 1억 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제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초전도 자석, 진공 용기, 냉각 시스템 등 고도의 공학 기술이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투입 에너지보다 많은 출력을 얻는 ‘에너지 이득’을 안정적으로 달성한 사례가 드물고, 경제성과 내구성 확보도 과제로 남아 있다. 일부 장치에서는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발생할 수 있어 사회적 수용성 측면에서도 해결이 필요한 과제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핵융합 기술 개발에 있어 꾸준한 진전을 보여왔다. 1995년부터 초전도 핵융합 장치 KSTAR 개발에 착수해 2007년 완공했으며, 2019년에는 세계 최초로 이온 온도 1억도 이상을 유지하는 초고온 플라즈마 실험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텅스텐 환경에서의 실험을 통해 상용화 기술 검증에도 돌입했다.
이러한 기술적 기반을 바탕으로 전남도와 나주시는 핵융합 실증로 및 연구시설 유치를 통해 국내 핵융합 기술의 실증과 상용화를 위한 거점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는 지역 에너지 산업의 고도화를 넘어, 국가 에너지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 세계 각국 기술 개발 경쟁 대열에 한국도 합류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한 결과물도 속속 도출되고 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은 10월 27일부터 케이스타의 2025년 플라즈마 실험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케이스타는 땅 위에서 태양과 같은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에너지를 생산하는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로, 핵융합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고체·액체·기체를 넘어선 제4의 상태인 초고온 플라즈마를 장시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KSTAR 주장치 및 주요 부대장치 현황 [자료=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http://www.biznews.or.kr/data/photos/20251044/art_17616369106076_c03f21.png)
핵융합연은 2023년 케이스타의 핵심 장치인 ‘디버터’의 소재를 텅스텐으로 교체한 뒤, 이 새로운 환경에서도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다루기 위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디버터는 플라즈마에서 나오는 강한 열로부터 진공 용기를 보호하는 장치로, 열에 강한 텅스텐은 핵융합로의 안쪽 벽을 만드는 데 적합하지만, 운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텅스텐 불순물이 플라즈마의 성능을 저하시키는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7개국이 공동으로 건설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에서도 텅스텐이 안쪽 벽의 재료로 쓰일 예정이어서, 텅스텐 불순물 제어는 국제 핵융합 연구계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케이스타 실험에서는 텅스텐 환경에서도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운전할 수 있는 고성능 운전 시나리오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을 활용한 실시간 제어 기술을 통해 플라즈마의 변화를 빠르게 감지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검증할 예정이다. 실험은 12월까지 진행되며, 한 달간의 정비를 거친 뒤 내년 2월부터는 2026년도 플라즈마 실험에 돌입할 예정이다.
한편, 세계 각국도 핵융합 기술 확보를 위한 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35개국이 참여하는 국제 공동 프로젝트 ITER가 건설 중이다. 원래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했지만, 최근 일정이 2033년 이후로 지연되며 기술적 난관을 드러냈다.
미국은 2022년 12월, 캘리포니아의 국립점화시설(NIF)에서 세계 최초로 핵융합 점화에 성공했다. 이는 투입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출력을 얻은 사례로, 핵융합 상용화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2023년 4월, ‘인공태양’으로 불리는 EAST 장치를 통해 1억도에 가까운 고온 플라즈마를 403초 동안 유지하는 데 성공하며 세계 최장 기록을 세웠고, 영국은 STEP 프로젝트를 통해 2040년까지 세계 최초의 상용 핵융합 발전소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25년 착공을 앞두고 있다.
결국 핵융합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패권’을 둘러싼 전략적 경쟁의 중심에 서 있다. 기술적 난관을 극복하고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인류는 에너지 고갈과 기후 위기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국내외 연구기관과 정부, 민간 기업의 협력과 지속적인 투자가 뒷받침되어야만 ‘인공태양’이 현실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