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전용 선박 없이는 해상풍력 14.3GW 목표는 공허한 숫자에 불과하다.”
2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오세희 의원이 정부의 해상풍력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14.3GW 규모의 해상풍력 발전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이를 실현할 핵심 인프라인 전용선 확보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음을 따끔하게 꼬집은 것이다.
해상풍력 확대를 꾀하는 정부로서는 오의원의 말이 뼈아플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30년까지 14.3GW 규모의 해상풍력 발전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를 실현할 핵심 인프라인 전용선 확보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임이 드러난 때문이다.
해상풍력 단지는 육상과 달리 바다에서 대형 터빈을 설치하고 장기간 유지보수가 요구돼 전용 선박이 반드시 필요하다. 안정적인 시설 존속에 필수적인 전용선 없이는 성공을 쉬이 장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현재 우리의 상황이 극도로 열악하다는 의미가 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풍력터빈 설치선(WTIV) 2척만이 존재하며, 유지보수선(SOV)은 단 한 척도 없다. 자재·인력 수송선(CTV)은 100척 이상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관련 사업은 80억 원 규모의 ‘한국형 CTV 모델 개발’ 단일 과제에 그치고 있다. 해상풍력 확대를 공언한 정부의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기술은 있는데 시장이 없는 조선강국의 역설
전용선박이 없다시피 한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변명할 수 있을까. 예산 부족, 기술력 부재 등을 언급할 수 있겠지만 재생 에너지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는 조선강국 대한민국을 떠올린다면 그 변명은 애초에 존재하기도 힘들다. 기술력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에 다다른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에서 짐작하듯 WTIV는 기술력이 요구되는 존재다. 해상에서 수십 톤짜리 풍력 터빈을 수십 미터 높이까지 들어 올리고, 정밀하게 설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고강도 잭업 시스템, 1,000톤급 크레인, 고정밀 GPS 기반 위치 제어, 풍속·파고 대응 설계 등 복합 기술이 집약돼야 한다.
![세계적인 조선강국이 전용선박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사진=대한조선]](http://www.biznews.or.kr/data/photos/20251043/art_17612823115671_334745.png)
또한 기술만으로는 WTIV 한 척을 만들 수 없다. 실제로 한 척의 WTIV를 건조하려면 100곳 이상의 하청업체와 부품 공급망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하며, 금융기관의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과 운용사와의 계약 구조까지 확보돼야 한다. 즉, WTIV 한 척은 산업 생태계 전체가 작동할 때만 건조 가능한 구조물이다.
우리는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한국은 2025년 상반기 기준으로 세계 조선 수주량의 25.1%를 차지하며 세계 2위를 기록한 조선 강국이다. 초대형 유조선, LNG선, 컨테이너선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해상풍력 전용선 분야에서는 존재감이 없다. 이는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설계의 방향이 대형 조선소 중심으로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해상풍력 전용선은 중소·중형 조선소가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다. 그러나 이들은 선수금환급보증(RG) 미발급, 공공 발주 부재, 인증 기준 미비 등으로 시장 진입 자체가 막혀 있다. 오 의원은 “중소조선소들은 RG 미발급과 일감 부족으로 고사 위기에 놓였다”며, 정부가 이들을 정책 설계에서 배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전용선 발주 보증 발급 꺼리는 금융권, 이유는 못 미더운 정부
RG 미발급 문제는 단순한 행정 절차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해상풍력 전용선 발주를 ‘비확정 수요’로 간주해 보증 발급을 꺼리고 있다. 이는 정부가 수요 예측과 공공 발주를 통해 시장 신뢰를 형성하지 못한 결과다. 금융이 산업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구조가, 기술이 있음에도 배를 만들지 못하는 현실을 낳고 있다.
WTIV 한 척을 만들기 위해선 정부가 수요를 보증하고, 금융기관이 리스크를 감당하며, 조선소가 기술을 집약하고, 부품업체가 공급망을 유지해야 한다. 이 네 축이 동시에 작동하지 않으면, 기술이 있어도 배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바다 건너 일본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일본은 2021년부터 해상풍력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2040년까지 200척의 전용선 확보를 목표로 설정했다. 국토교통성과 경제산업성이 공동으로 마련한 ‘선박 조달 및 운용 가이드라인’은 WTIV 운용사와 풍력 개발사 간의 장기 계약 구조를 표준화해, 선박 확보 이후의 운용 리스크까지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선박 확보 이후의 운용 주체조차 명확하지 않다. WTIV 한 척을 만들기 위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이유다.
산업부는 해상풍력 전용선 확보를 통해 약 8000억 원의 경제효과와 2000명 이상의 신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WTIV·SOV 운용 인력에 대한 전문 교육은 전무하며, 지역 기반 조선소와 부품업체는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WTIV 한 척을 만들기 위해선 선박만이 아니라 사람도 준비돼야 한다.
오세희 의원은 국감에서 전용선 수요·공급 전수조사, 국내 건조 로드맵 수립, 산업부·해수부·국토부 합동 TF 구성, 중소조선소 대상 공공 발주 확대 및 RG 구조 개선 등을 촉구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로드맵이 아니라, WTIV 한 척을 만들 수 있는 산업 설계의 전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