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일본 정부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으로만 전력을 공급받는 공장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기업의 탈탄소 전환을 촉진하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려는 의도지만, 원자력 포함 여부를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시작부터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제반 정책이 흔히 빚는 논란이다.
이런 풍경은 사실 그리 낯설지 않다. 화석연료 의존으로 탄소중립 달성에 어려움을 겪는 한국 역시 종종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원자력 활용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 속에서 에너지 전환 전략을 모색하고 있어, 이번 일본의 시도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 5년에 걸쳐 2조원 규모의 보조금 지원 카드 ‘만지작’
아시아 뉴스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일본의 경제지 ‘니케이 아시아’는 22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재생에너지 또는 원자력으로 전력 수요를 100% 충당하는 공장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공식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정책은 태양광·풍력·원자력 발전을 활용해 제조업체의 전력 조달을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특히 전력 사용량이 많은 대형 공장이 주요 지원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보도에 따르면 2026 회계연도부터 5년에 걸쳐 총 2,100억 엔(약 13억 3천만 달러)을 배정할 계획이라고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이를 통해 기업의 탈탄소 전환을 촉진하는 동시에 원자력 활용을 정당화하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주된 지원 대상은 전력 사용량이 많은 대형 제조업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기업들이 청정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겪는 비용 부담을 완화하고, 국제 시장에서 ‘탄소중립 공장’ 인증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 목적을 가진다.
보도는 또한 이번 정책이 일본의 에너지 안보 전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여전히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아 국제적 기후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원자력 발전을 재가동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원자력을 ‘탄소 없는 전력원’으로 규정하고, 재생에너지와 함께 청정에너지 전환의 핵심 축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니케이 아시아는 이번 보조금 정책이 국제 경쟁력 확보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탄소중립 인증은 점점 더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되고 있으며, 일본 기업들이 이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수출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정부가 직접 비용을 보전해 기업의 전환을 유도하는 것은 국제 무역 환경에서 일본 산업을 보호하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 재생에너지 확대와 원자력 활용을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관건
이러한 일본 정부의 보조금 확대 움직임은 국제적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해 수입품에도 탄소비용을 부과하며 기업의 탈탄소를 강제하고, 동시에 재생에너지 투자 보조금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청정에너지와 배터리, 전기차 산업에 대규모 지원을 제공하며 제조업 리쇼어링과 일자리 창출을 강조한다. 중국은 태양광과 배터리, 전기차 분야에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덕분에 뛰어난 가격 경쟁력 확보에는 성공했지만 과잉생산과 덤핑 논란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일본 역시 이 대열에 서야할 입장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를 위해 원자력까지 포함해 청정에너지의 범위를 넓히고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여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려 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중이다. 이는 일본만의 환경을 고려한 판단으로 추정된다.

유럽과 미국이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정책을 설계하는 것과 달리 원자력 활용을 전면에 내세운 대목은 일본과 유사한 고민을 안고 있는 한국으로서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넷제로를 향한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석탄과 LNG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일본의 시도가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지 지켜보아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물론 정책 접근 방식 자체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일본은 원자력을 청정에너지 범주에 포함시켜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반면, 한국은 원자력 확대에 대해 사회적 논란이 여전히 크고 정책적 방향도 신중하다는 것이 그것. 한국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강조하면서도 원자력 활용에 대해서는 정치적·사회적 합의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일본은 기업의 비용 부담을 직접 보조금으로 완화하려는 전략을 택했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규제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기업의 전환을 유도하는 방식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예컨대 한국은 EU의 CBAM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 기반 공장 인증 제도를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미국 IRA처럼 대규모 재정 지원보다는 민간 투자 유도를 강조하는 모습이다.
니케이 아시아의 이번 보도는 일본 정부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동시에 활용해 청정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전략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환경 정책을 넘어 국제 경쟁력 확보와 에너지 안보 강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겨냥한 조치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원자력 활용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재생에너지 확대와 국제 무역 규범 대응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석탄과 LNG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현실을 고려하면 일본의 정책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결국 한국의 과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원자력 활용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그리고 국제 무역 규범 속에서 산업 경쟁력을 어떻게 지켜낼지에 달려 있다. 일본의 행보는 논란 속에서도 분명한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한국이 앞으로 어떤 길을 택할지에 대한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