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거지는 ESG 후퇴론, 늦기 전에 발 빼라고?

  • 등록 2025.08.22 08: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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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하는 미국, 반발하는 EU·중국, 한국은 공시 제도화로 대응
반ESG 기조 채택 미국 부정적 흐름 만들 액션 다수 선보여



[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한때 시대의 유행처럼 여겨지던 ESG를 둘러싼 기류에 심심찮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런 흐름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미국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기후변화 대응 및 지속가능금융 정책의 급격한 조정으로 인한 파장이 글로벌 ESG 시장 전반에 구조적인 불확실성을 불러온 것이다. 


더 심각한 건 트럼프 정부의 노골적인 반(反)ESG 기조가 세계적 흐름을 뒤흔들면서 탈(脫)탄소 투자의 마지막 보루로 평가받던 유럽에서조차 ESG 펀드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심심찮게 등장하는 ESG 후퇴론의 근거인 셈이다. 


이런 일련의 사태들이 ESG 후퇴론에 힘을 싣고 있지만 한번 터진 거대한 물꼬가 진압될 것이라는 발상은 오해에 가깝다. 2023년 MSCI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기관 투자자의 74%가 ESG 성과를 장기투자의 핵심요인으로 평가하고 있을 정도로 여전히 핵심적인 평가 기준이기 때문이다. 


◆ 비용만 증가시키고 실질적 성과는 없는 ESG

최근 들어 ESG 후퇴론을 입에 담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가장 주된 이유는 달라진 미국의 행보에 있다. 미국의 재채기 한 번에 독감을 앓아야 하는 세계 각국의 입장을 고려해보면 딱히 틀린 이야기만은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반ESG 행보는 끊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통령 취임 직후 파리협정 재탈퇴를 공식화했고 UN 기후 피해 기금 이사회에서도 탈퇴하는가 하면 전기차 정책 재조정과 차량 배기가스 배출 규제 완화를 연달아 선보였다. 


뿐만 아니다.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규제 유예 발표와 함께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보조금도 축소하면서 부정적인 흐름을 심화시키고 있다. ESG를 '기업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적 도구’로 묘사할 정도로 트럼프 정부의 입장은 노골적 그 이상이다. '비용만 증가시키고 실질적 성과는 없다’거나 '이념적 논쟁일 뿐’이라는 ESG 회의론자들의 주장을 맹신하는 듯한 모양새랄까. 


파장이 커지지 않을 수 없다. 미국 ESG펀드의 자금 유출이 뒤따른 건 당연한 시장의 흐름이다. ESG 펀드 자금 유출이 장기화되며 2025년 1분기에는 61억 달러의 순유출을 기록했고, 신규 ESG 펀드 출시도 사실상 중단됐다. ESG 정책의 불확실성과 반ESG 정치 기조 확산이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된다.


미국의 흐름 변화는 곧 글로벌 금융기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ESG 펀드 자금 유출이 장기화되며 2025년 1분기에는 61억 달러의 순유출을 기록했고, 신규 ESG 펀드 출시도 사실상 중단됐다. ESG 정책의 불확실성과 반ESG 정치 기조 확산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시장의 반응 역시 대동소이하다. 미국 대형은행들이 Net Zero Banking Alliance(NZBA)에서 잇따라 탈퇴하며 탄소중립 목표를 철회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웰스 파고, 씨티그룹, JP모건 등은 ESG 조사 부담과 그린워싱 논란을 이유로 탈퇴를 선언했고, 캐나다·영국·호주·일본의 주요 금융기관들도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HSBC와 UBS, RBC 등은 기후 목표를 수정하거나 철회하며 지속가능금융 전략을 재조정 중이다.


더 이상 ESG가 황금알을 낳아줄 수 없다고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그룹이 미국의 경쟁마인 유럽과 중국이다. 그들은 여전히 ESG 확대를 통해 기업 경쟁력,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신뢰성과 투명성 확보로 한국형 ESG 평가 체계 구축해야

2025년 2월, EU 집행위원회는 '옴니버스 패키지 법안'을 발표했다. ▲ESG 공시대상 기업의 범위 축소 및 공시 일정 유예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자발 공시 기준 마련 ▲산업별 세부 공시 기준 삭제 ▲인증 요건 완화 및 협력사 실사 범위 축소 등의 내용을 담은 이 법안은 ESG 공시체계를 보다 실효성 있게 다듬으며 여전히 글로벌 기준을 이끌고자 하는 흐름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규제를 합리화하고 행정부담을 줄이되, 기본적인 공시 프레임은 유지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흐름이라는 설명이다.


여전히 ESG는 신뢰와 지속가능성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수치로 증명해 가는 도구이며 투자사·고객사·글로벌 파트너와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국제적 언어’임을 의심치 않는다는 뜻이다. 중국의 행보 역시 이를 수렴하는 모양새다.


중국은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기후 리스크 대응과 ESG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2025년 1월 에너지법 시행과 4월 전면적 탄소감축 계획 발표를 통해 재생에너지 확대와 기술 지원을 강화하고 있으며, 녹색채권을 활용한 자금 조달과 해외 친환경 프로젝트 확대를 통해 국제적 입지를 넓히고 있다. 


우리는 어떨까. 전체적으로 보면 전략적 대응 강화를 통해 ESG 체계 구축을 공고히 하는 모양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은 ESG 공시 제도화를 위한 준비를 지속하고 있으며, 2024년에는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초안을 발표했다. 


해당 초안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기준을 바탕으로 국내 실정에 맞게 재구성되었으며, 일반사항과 기후 관련 공시사항, 정책 목적에 따른 추가 공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융당국은 2026년 이후 ESG 공시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며,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기업 및 투자자 의견을 반영해 기준의 정합성과 정보 유용성을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ESG 정책의 혼란 속에서도 국내는 공시 제도화를 통해 신뢰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을 유지하면서도 한국형 ESG 평가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냉정하게 보면 ESG는 여전히 과도기 속에 놓여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미국의 반ESG 기조를 마냥 무시할 순 없지만 결국은 기업이 시장과 사회를 앞장 서서 이끌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문법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의 일보후퇴가 내일의 이보전진을 위한 도움닫기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지금은 내실 있는 대응책 마련에 힘써야 할 시간이다. 

손영남 기자 son361@biz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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