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언제부터인가 매년 여름이면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물잔치를 벌이는 모습이 수시로 발견되고 있다. ‘워터밤’, ‘흠뻑쇼’ 등 연예인들의 공연을 즐기며 수백톤의 물을 만끽하는 이 모습은 가히 여름의 상징과도 같은 행사로 거듭나고 있다. EDM 음악과 함께 쏟아지는 수백 톤의 물줄기는 열기를 식히고, 도시를 축제의 장으로 바꾼다.
일견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해 보이는 장면이지만 그 화려한 물의 향연 뒤에는 점점 더 마르고 있는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실이 있다. 기후 위기와 가뭄으로 마르고 있는 저수지와 물 부족에 시달리는 농민들이 바로 그것. 타들어가는 농심과 환호하는 젊음의 앙상블을 바라보는 시선에 착잡함만이 깃든다.
◆ 공급 제한 나선 강릉, 일부 지역에서도 초기 가뭄 발생
지난 7월, 집중 호우로 인해 발생한 전국적 피해를 떠올려본다면 잘 상상이 가지 않지만 2025년 여름은 의외로 가뭄으로 인한 균열이 군데군데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일, 역대급 여름 가뭄에 시달리는 강릉시가 물 공급 제한에 들어갔다. 대상은 주문진·연곡·왕산 등 외곽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으로 계량기 50% 잠금 조치가 시행된 것. 그조차도 피서철 성수기를 감안해 해수욕장 폐장 시점까지 버틴 결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6개월 동안 강릉 누적 강수량은 386mm로, 평년 대비 절반인 51.5%에 그쳤고 이에 강릉지역 주 상수원인 오봉저수지는 바닥이 드러날 정도에 이른 것이다.
멀지 않은 속초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농업용수로 활용하는 속초 원암저수지의 저수율은 한때 23.8%까지 떨어지며 평년 수준의 31.6%를 기록할 정도였다. 평균 900mm가 넘던 제주 지역의 최근 6개월 누적 강수량도 726.7mm에 머물러 일부 지역에서 초기 가뭄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는 단순한 지역적 현상이 아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6월과 7월의 누적 강수량은 평년의 68% 수준에 그쳤으며, 특히 내륙과 섬 지역에서는 생활용수와 농업용수, 공업용수 모두에서 공급 불안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불안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현재의 가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상이다. 비슷한 시기, 서울과 부산, 속초 등지에서 성황리에 개최된 ‘워터밤’과 ‘흠뻑쇼’ 같은 대형 물 축제가 그를 방증한다.
대표적인 물 축제인 싸이의 ‘흠뻑쇼’는 공연 한 회당 최대 300톤에 달하는 물을 분사하며 관객을 적신다. 이는 중형 아파트 단지의 하루 생활용수와 맞먹는 수준이다. 도시의 열기를 식히고 수만 명의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축제지만, 모두가 그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환경단체들은 “가뭄 지역의 하루 물 사용량과 맞먹는 물을 소비하는 축제가 사회적 감수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당장 시급한 물 부족에 대한 우려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물 남용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지 않는 것에 대한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물론 공연 관계자들의 변론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물 축제에 사용되는 물은 산업용수나 순환수 활용으로 충당된다는 것이 그것. 무엇보다 이를 통해 얻어지는 지역 경제의 이득은 단순한 물 소비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현재 한국이 물 부족에 시달리는 국가가 아닌 이상, 이 정도의 사용이 낭비 운운하는 비난거리가 될 이유는 없는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 국제적으로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맘 놓고 있을 수준 또한 아니다. 현재 한국은 물 스트레스 국가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는 사용 가능한 물에 비해 수요가 높은 상태를 의미하며, 특히 강우량이 여름철에 집중되고 국토 면적이 좁아 수자원이 고르게 분포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강원도와 제주도에서 발견되는 여름 가뭄이 그를 잘 보여준다.
◆ 물은 곧 에너지, 맞춤형 대응 체계 구축 불가피
역사를 통틀어 대다수 정부의 치수(治水) 정책은 나라의 명운을 담보할 중차대한 사명이었다. 이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중요성이 더 커진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물 스트레스는 단순히 생활의 불편을 넘어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는 문제기 때문이다.
강과 하천에서 과도한 취수와 방류가 반복되면 수생 생물의 서식지가 사라지고, 하천 생태계가 붕괴된다. 실제로 낙동강과 금강 일부 구간에서는 하천 유량 감소로 인해 어류 개체 수가 급감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또한, 우리가 소비하는 식량과 제품 중 상당수는 ‘가상수’(virtual water)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수입 농산물이나 공산품을 생산하는 데 사용된 외국의 물 자원을 의미하며, 한국의 소비가 다른 국가의 물 고갈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적 책임도 함께 따른다.
무엇보다 물 부족은 에너지 위기와 직결된다. 화력, 수력, 원자력 발전소 모두 냉각과 운전에 대량의 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물이 부족해지면 전력 생산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 물과 에너지는 더 이상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2025년 3월,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관계부처 합동 ‘가뭄대책 TF’를 출범시킨 것도 이와 동일한 맥락이다. 이어 발표된 ‘2025 가뭄종합대책’에는 보다 정교하고 선제적인 대응 전략이 담겨 있다.
우선, 가뭄 정보를 읍면동 단위로 세분화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기상·농업·생활·공업용수 등 분야별로 대응 체계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가뭄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고, 상습 가뭄 지역에는 최대 60억 원의 재난특별교부세를 지원하기로 했다. 지자체가 자체적인 가뭄대비 대책을 수립하도록 의무화한 것도 이번 대책의 핵심이다.
국토교통부 역시 수도정비기본계획을 변경하며 물 공급 체계 전반을 손보고 있다. 광역상수도 공급지역을 확대하고, 산업단지의 공업용수 수요를 보다 정밀하게 예측하는 한편, 저탄소 수도시스템을 구축해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이다. 노후 수도관을 개량하고 정수장의 성능을 개선하는 작업도 병행되고 있으며, 비상 상황에 대비한 급수 연계 체계도 마련 중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공급 확대를 넘어, 물 소비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축제나 산업 현장에서의 물 사용에 윤리적 기준을 마련하고, 중수도와 빗물 재활용 시스템을 확대하는 것이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별로 맞춤형 가뭄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시민들이 직접 물 절약과 급수 모니터링에 참여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물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의 생존 기반이라는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