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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출발, 다른 결과” 까마득히 벌어진 한국과 영국의 해상풍력

전력의 17% 공급, 4만명 고용하는 산업으로 성장한 영국 해상풍력
정권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정책의 일관성 유지해야 성공 보장



[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에너지전환의 핵심축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해상풍력은 바람을 전기로 바꾸는 기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항만을 다시 움직이게 하고, 제조업을 되살리며, 전력시장의 구성을 바꾸는 힘이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은 해상풍력 증대를 위한 다각적인 계획을 구축하고 그 실행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현실은 초라하기만 하다. 


정부는 2030년까지 12GW 구축을 공언하며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실제 누적 설치 용량은 200MW 안팎에 머물러 있고,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은 8~9% 수준에 그치는 실정이다. 말로는 전환을 이야기해 왔지만, 바다의 바람을 현실의 전력으로 묶어내는 일에서는 반복적으로 발목을 잡힌 채 시간을 흘려보낼 뿐이었다. 그 사이 경쟁국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 연간 1600만 가구에 전력 공급할 수 있는 16GW 규모로 성장

지난 8일,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는 ‘25 Years of British Offshore Wind’ 보고서를 통해 영국의 해상풍력 실태를 집중 조명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000년 블라이스 해상풍력단지 개장을 시작으로 해상풍력 구축에 본격적으로 매달린 영국은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영국 전력의 17%를 공급하며 약 4만명을 고용하는 산업으로 키워왔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2000년 블라이스에서 두 기의 터빈으로 시작한 해상풍력을 2025년 16GW 규모로 키웠고, 지금은 전력의 17%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해상풍력 산업은 약 4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며 험버 같은 쇠락한 항만 도시들을 새로운 제조·물류 거점으로 바꿨다. 




무엇보다 ‘Contracts for Difference’라는 가격 안정 장치를 뼈대로 삼아 장기 투자 신뢰를 확보했고, 2024년 석탄 전면 퇴출과 함께 재생 중심의 전력 구조를 현실로 만들었다. 해상풍력은 영국에서 더 이상 실험이 아니라 산업과 안보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것이 한국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그저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양국의 격차는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술력의 부족이나 의지의 결여만으로 설명하기엔 그 차이가 너무도 지대하다. 왜일까?


한국이 유사한 결과에 닿지 못한 이유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제도와 실행의 문제다. 인허가 과정은 환경영향평가, 어업권 조정, 군사·항로 규제, 경관·소음 민원 등 복합 이슈가 꼬리를 물며 평균 수년을 소요하게 되고, 그 사이 정책 방향은 정권과 기관마다 흔들려 투자자는 일관된 전망을 잡기 어렵다. 


주민 수용성은 사업의 시작과 끝을 가르는 변수임에도 지역 경제와 연결된 공급망·인력·세수 설계가 부족해 설득이 뒷받침되지 못했고, 갈등은 지연을 낳고 지연은 비용을 키워 다시 갈등을 키웠다. 이 악순환이 표준이 되면서 ‘가능한 잠재력’은 ‘지연된 약속’으로 바뀌었다.


대표 사업인 신안 해상풍력은 세계 최대급으로 주목받았지만, 어업·경관·이익 공유를 둘러싼 지역적 쟁점과 행정 절차 지연이 겹치며 속도를 내지 못했다. 단지 한 사업의 문제가 아니라 해상풍력 전반의 구조적 병목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사업자는 발전소만이 아니라 항만 하역, 특수 설치선, 초대형 터빈 조립·운송, 해저케이블 포설, 변전소 연계, 계통 보강까지 광범위한 준비가 필요하지만, 국내 항만·설치선·케이블·계통 설비의 병렬적 확충은 계획과 속도 모두 부족했다.


전력시장 설계도 장애로 작용했다. 한국의 도매가격(SMP) 변동성,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격 하락, 계약 기반 수익 안정장치의 빈틈은 대규모 해상풍력의 자본비용을 높인다. 장기 고정가격 계약을 보장하는 영국식 CfD에 준하는, 은행 대출이 신뢰할 수 있는 수익 가시성을 갖춘 제도가 넓고 깊게 작동하지 못한 탓에 개발·건설·운영 전 단계에서 금융조달이 과도하게 보수적으로 변했다. 결과적으로 ‘투자 가능한 프로젝트’의 모수가 줄고, 시간이 지날수록 국제 자본은 다른 시장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변모한다.


계통과 수요 측면의 준비도 불충분했다. 서해·남해의 대규모 해상풍력 전력을 내륙 핵심 수요지로 안정적으로 이송하기 위한 송전선로·변전설비 보강은 사업 인허가와 별개로 병렬 추진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후행하거나 지연되어 발전 제약 위험을 키웠다. 산업용 전력 수요의 탈탄소를 견인할 기업 간 장기 PPA, RE100과 연동된 가격·인증 체계, 분산형·유연성 자원과의 통합 운영은 아직 초기 단계로, 해상풍력 전력의 시스템적 가치가 시장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 많은 계획 세우는 것보다 일관성 지닌 실행 뒤따라야

국가 목표와 현실의 괴리는 선언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다. 정부는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로 2018년 대비 53~61% 감축을 내걸었지만, 2030 목표 달성조차 불투명하다는 인식이 투자자와 산업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목표는 높고 수단은 약하며, 일정은 빠르지만 절차는 느리다. 이 간극을 줄이는 방법은 목표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목표에 맞게 수단을 재설계하고 실행의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영국이 한 일이라면 한국도 할 수 있다. 우리 조선·해양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설치선을 만들 수 있고, 초대형 터빈 제작·조립 역량도 빠르게 구축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연속성 있는 프로젝트 파이프라인과 그 파이프라인을 지탱하는 정책 신뢰다. 일정이 확정된 다년계 CfD형 장기계약, 인허가 일괄·병렬 처리, 항만·계통 동시 투자, 지역 이익공유를 제도화하는 법적 틀, 해상풍력 전문 인력 양성의 국가 프로그램이 맞물릴 때, 한국은 단숨에 ‘잠재력’에서 ‘성과’로 이동할 수 있다.




매번 정책의 발목을 잡는 주민 수용성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임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항만 현대화, 직·간접 고용, 지역 재정 확충, 어업 보상과 생태 모니터링을 투명하게 설계하고, 프로젝트 수익과 지역 이익을 정량적으로 연결하는 메커니즘을 제도화하면 반대는 협의로 바뀔 수 있다. 영국의 험버 사례처럼 산업의 중심을 지역과 공유하면 해상풍력은 ‘남의 발전소’가 아니라 ‘우리의 산업’이 된다.


이에 더해 한국의 전력시장은 재생 전력의 시간·공간 가치와 유연성 자원의 가치를 제대로 가격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정비되어야 한다. 송전 혼잡·발전 제약을 줄이는 계통 투자를 앞당기고, 저장·수요반응·가변재생의 통합 운영을 가격신호와 연동하면 해상풍력의 시스템 기여도가 기업과 금융의 언어로 번역된다. RE100과 장기 PPA를 촘촘히 연결해 산업계가 해상풍력을 직접 조달하는 경로를 표준화하면 수요 기반이 견고해진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시도했다. 계획을 발표하고, 수차례 로드맵을 만들었으며, 예산과 사업을 배정했다. 그러나 시도와 성과는 다르다. 해상풍력은 선언을 싣고 출항하는 배가 아니라, 완성도 높은 설계도와 숙련된 선원, 정비된 항만, 예측 가능한 항로가 있어야 나아간다. 그 준비가 부족했다. 지금은 그것을 채우는 시간이다.


결국 문제는 의지와 일관성이다. 같은 바람이 한국과 영국 해안 모두에서 분다. 그럼에도 차이는 명확했다. 한쪽에서는 국가 전력과 산업을 바꿨고, 다른 쪽에서는 잠재력이라는 말만 남았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바람이 아니라 제도와 실행이다. 2035 NDC는 우리의 약속이자 시험이다. 약속을 현실로 만들면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생기면 자본과 기술이 따라온다. 약속을 반복만 하면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는 같은 자리에서 바람만 바라보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석탄 퇴출의 명확한 일정, 해상풍력 전용 장기계약의 제도화, 인허가 일괄·병렬 처리, 항만·설치선·계통의 동시 투자, 지역 이익공유의 표준화, 그리고 기업 수요와 직접 연결되는 장기 PPA의 확산이다. 이 조합은 복잡해 보이지만, 이미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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