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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안보는 어쩌나” 수입 식자재 홍수에 침몰하는 농가

취약한 가격 경쟁력에 대형 유통업체 등은 수입에 크게 의존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 19.3% 불과, OECD 평균은 약 80%



[산업경제뉴스 손영남 기자] 경기도 평택에서 수십년째 토마토 농사를 짓는 김 모 씨는 최근 들어 토마토 농사를 접어야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시달리고 있다. 갖은 고생 끝에 출하하더라도 제대로 된 가격을 받지 못해 사실상의 적자에 시달리는 때문이다. 김 씨의 토마토가 ‘비싸고 경쟁력 없는 상품’이 된 것인데, 이는 비단 토마토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국내 농가들 상당수가 비슷한 고민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하나, 값싼 수입산 농산물의 범람 덕택이다. 이 같은 현실은 최근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5년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국내 식품 수입액은 86억 6천만 달러(약 12조 4천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3.5% 증가했다. 특히 양파·양배추·감귤 등 신선 농산물 수입량이 13.5% 늘어나면서 국내 농가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소비 기반 약화는 곡물 자급률 하락과 맞물려 우리 농업의 구조적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 농업은 단순 산업 아닌 국가 안보 차원의 방어선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발표한 ‘농업전망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2020년 21.0%에서 2024년 19.3%까지 꾸준히 하락했다. OECD 평균이 약 80%임을 고려하면 한국은 국제 공급망 충격에 매우 취약한 구조다.


곡물자급률은 쌀, 보리, 밀, 옥수수 등 국가별 곡물 생산량에서 자국 내 소비되는 비율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알아본 전 세계 평균 곡물자급률은 100.7%에 달한다. 주요국 중 곡물자급률이 가장 높은 국가는 호주이며, 자급률은 338.8%로 집계됐다. 이어 캐나다 169.9%, 미국 122.4%, 중국 92.2%, 일본 27.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일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100% 가까운 자급률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19.3%가 터무니없이 낮은 수치라는 방증이다. 


품목별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농림축산식품부 2024년 통계연보에 따르면, 밀 자급률은 0.8%, 옥수수는 3.5%, 콩은 26%에 불과하다. 사실상 대부분을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다는 의미다.  품질 좋은 국내 농산물이 외면받는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외식업체와 대형 프랜차이즈가 원가 절감을 이유로 수입산을 선호하면서 국내산 소비는 더욱 위축되고 있다.


국내 농가를 위협하는 것은 가격 구조에만 있지 않다. 최근에는 여기에 더해 미국의 통상 압박 가능성도 국내 농업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무역수지 개선을 목표로 우리에게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미국은 자국의 관심도가 높은 품목, 우리가 제3국으로부터 주로 수입하는 품목, 그리고 중국으로 수출해왔지만 대체 시장이 필요한 품목을 중심으로 압박할 수 있다. 만약 미국산 농산물 수입이 늘어나면 국내 시장에서 우리 농산물과의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농가 소득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또한 미·중 갈등 속에서 미국은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공격적인 통상 대응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우리 농산물의 수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가공식품 중 중국산 원재료를 사용하거나 생산공장이 중국에 있는 경우, 수출 제한에 직면할 수 있다.


수입 측면에서도 위험은 크다. 우리나라가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농산물은 2024년 11월 기준 약 4억 7천만 달러로, 전체 농산물 수입액(26억 달러)의 18.2%를 차지한다. 중국산 농산물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공급망 불안 시 곧바로 국내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 확보를 위해 중국산 의존도를 낮추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전략이 시급하다.


◆ 국제곡물 가격 하락 속에서 방치되는 국내 농산물 경쟁력 상실

수입산의 공세가 가속화되는 저변에는 하락세를 이어가는 국제 곡물 가격의 덕도 크다. 실제로 국제 곡물 가격은 2025년 들어서도 하락세를 이어갔다. FAO 곡물 가격 지수는 지난해 10월 기준 103.6포인트로 전월 대비 1.3% 하락했으며, 밀과 옥수수 가격은 공급 증가로 각각 1% 안팎 낮아졌다. 대두는 남미 지역 가뭄으로 단기 상승세를 보였지만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보였다.


한국의 곡물 수입단가도 이에 맞춰 낮아졌다. 사료용 곡물 수입단가지수는 2025년 1분기 138.5에서 4분기 125.2까지 하락했으며, 밀은 톤당 259달러로 전년 대비 6.2% 하락, 옥수수는 톤당 246달러로 5.3% 하락했다. 대두박은 톤당 407달러로 무려 23.8% 하락했다.



 

이처럼 국제 곡물 가격이 낮아지면서 국내산은 경쟁력을 잃고, 생산비조차 건지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충남의 한 양파 농가는 “올해 수확한 양파는 가격이 수입산에 밀려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생산비조차 건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수입산 농산물의 범람으로 인한 식자재 가격 안정세가 반가울 테지만 농가들은 답을 찾을 수 없는 어려움이 계속 되는 형편이다. 무엇보다 대형 유통망을 통한 수입산 집중 유통은 국내 농산물의 판로를 더욱 좁히고 있다. 가격 결정권을 쥔 유통업체에 비해 농민은 협상력이 거의 없어 생산비 상승분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기도 어렵다.


안 그래도 급속히 붕괴되고 있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농업 종사자의 평균 연령은 이미 67세를 넘어섰다. 젊은 세대의 이탈로 농업의 지속 가능성은 약화되고 있으며, 농가 부채는 생산비 상승과 가격 하락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는 농업 기반 붕괴를 가속화하는 요인이다.


대외적 요소도 불안정하긴 매한가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곡물 수출국의 지정학적 불안을 키우고 있으며, 엘니뇨·라니냐 같은 기후 변동은 남미·동남아 지역의 생산량을 크게 흔들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국제 변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구조다.


이런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자급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는 현실은 단순히 농가의 생존 문제를 넘어선다.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거나 기후 위기로 수입선이 막히는 순간, 국민의 밥상은 곧바로 위협받을 수 있다. 값싼 수입산에 의존하는 지금의 구조는 결국 식량 안보의 균열을 의미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를 인식하고 있다. 2025년 1월 발표한 ‘농식품 5대 민생 안정 패키지’에서 정부는 직불금 단가 인상, 농업수입안정보험 전국 시행, 재해보험 확대 등을 통해 농가 소득 안정과 생산 기반 유지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2025년 5월에는 2027년까지 식용곡물 자급률을 55.5%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재의 추세를 고려하면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열거된 그 모든 요인들은 현재 대한민국 국가 식량 안보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음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다. 값싼 수입산에 의존하는 지금의 구조를 방치한다면 언젠가 국제 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밥상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농업을 산업이 아닌 국가 안보 자산으로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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